본문
류승연 작가의 “아들이 사는 세계”는 발달장애를 가진 아들이 살아왔던 세계와 살고 있는 세계, 그리고 살아가야 할 세계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고립이 아닌 공존의 세계로’에서는 자립생활을 목표로 제도와 사회적 공존의 여건들을 다룬다. 2부 ‘똑같은 사람, 똑같은 마음’에서는 발달장애인도 똑같은 마음과 심리를 가진 사람임을 말한다. 그러므로 잘 살펴보면 문제행동이 아니라 몸짓 언어임을 알게 되고, 행동의 변화와 성숙을 신뢰적 관계로 풀어나가야 함을 이야기한다.
3부 ‘자금부터 준비해야 하는 행복한 어른 생활’에서는 성인기의 생활 모습을 목표로 생활 중심 참여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현재의 교육이 학습 중심의 교육임을 비판한다.
1부는 제도와 사회적 환경, 2부는 발달장애 개인의 이해, 3부는 교육적 문제를 다룬 것이다. 부모로서 경험한 것을 너무나 솔직하게 밝히면서도 전직 기자답게 취재를 통해 발로 뛰면서 얻은 결과물을 나누고자 하고 있다.
프롤로그에서 더운 지하철에서 징징대는 아들의 입을 막은 남편과 대립했던 이야기가 책을 쓰기로 한 계기임을 밝힌다. 입을 막은 남편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작가도 ‘아 힘들다’란 말을 하면 안 되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참아지지 않았다. 아들 마음을 혼자만 알면 안 될 것 같아 펜은 든 것이다. 이 책에 실린 글은 언론매체를 통해 실은 칼럼 모음집이다. 그리고 아들의 루틴들이 달라지는 경험과 다시 퇴행하는 모습들을 자세하게 고백 형식으로 적고 있다.
작가는 아들이 어릴 때는 치료에 관심을 가졌지만 자녀가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그것은 달라진 세계임을 뒤늦게 알았다고 한다. 이 책은 성인기, 정확히 말하면 청년기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발달장애인 부모를 위한 책 같지만, 어릴 때부터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다루고 있어 모든 발달장애인 부모들을 위한 책이라 할 수 있다.
발달장애인은 유일한 친구가 엄마이다. 작가는 고독사가 아니라 고립사가 맞는 용어라며 고독하다고 죽는 것이 아니라 고립되면 죽는다고 말한다. 성인기에 발달장애인은 고립되지 않아야 한다. 아직도 특수학교에서는 중증장애인은 성인기 시설입소를 염두에 두고 교육하는 시대에 맞지 않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자립은 경제적 자립, 물리적 자립, 심리적 자립 등이 필요한데, 다른 것은 사회적 서비스가 감당할 수 있지만, 심리적 자립의 준비는 부모의 몫이다.
작가는 아들의 성인기 자립 주거 형태를 지원주택으로 설정하고 있다. 시설이 아니면서 주거와 서비스(주거코디와 주거코치)가 결합 되어 있고, 자기 명의의 주택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자립에 실패한 사례도 소개한다. 활동지원사가 편취를 하거나 주변인이 사기를 치는 경우, 발달장애인은 거부를 못해서 당하고 시설로 돌아오는 경우, 선택권 행사를 해보지 못해 부적응한 경우 등이 있다. 실패하지 않으려면 자기방어 능력이 부족하므로 갈등 해결 능력을 키워야 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지원 인력에게 장애인이 권리인 양 지나친 요구를 하거나, 솔직하게 노골적인 호감을 표시하는 등 문제가 일어나기도 한다. 직장에서는 업무적인 문제는 조정이 가능하지만 인간관계적인 문제는 옹호집단을 통해 배우도록 해야 한다. 장애인의 과도한 요구는 마음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과감히 거절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모든 문제는 사회성의 문제다.
장애 자녀에게 보호는 최선을 하면서도 선택권을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선택하는 방법을 익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하고 책임과 자제력을 가르쳐야 한다. 늙어가는 부모는 자식이 먼저 죽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사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실패와 시행착오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엄마의 내려놓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오늘의 해결책이나 행동이나 지식의 향상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방향성이다.
발달장애인은 두 가지 패턴이 있다. 하나는 상동행동의 패턴이고, 또 하나는 자신이 익힌 것만 고집하는 패턴이다. 이것을 루틴이라고 한다. 모방행동을 할 수 없지만 칭찬은 안다. 칭찬은 동기를 부여한다. 칭찬을 받고 신나게 하던 행동도 더 잘하는 사람 앞에서는 다른 곳에 관심을 보이며 외면하는데, 발달장애인도 나름의 방어기제가 있기 때문이다. 방어기제는 억압과 억제, 부정, 동일시, 승화, 투사, 보상, 전이, 합리화, 반동형성, 해리, 퇴행, 주지화, 이타심, 유머 등이 있다.
발달장애인도 자신이 장애를 가졌음을 안다. 다름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발달장애인의 행동으로 판단하지 말고 마음으로 판단해야 한다. 행동수정이 아니라 사람 속에서 갈등을 풀어나가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발달장애인도 고립을 싫어하고 어울리고 싶어 한다. 장소나 상대에 따라 루틴이 달라지는 것은 신뢰의 문제다. 자신에게 친근한 사람인지를 잘 안다. 놀아주고 장난을 쳐 주는 사람에게 호감을 보인다.
장애인은 위험으로 느끼고 거리를 두는 사람에게는 위험한 행동을 보일 수 있다. 어울리는 방법을 모르고 아직 미숙하지만 욕구가 같고 심리와 마음은 비장애인과 전혀 다르지 않다. 놀이는 긴장된 심박수로 인해 두근거림과 설렘으로 착각하여 호감으로 인식한다. 이러한 관계에서 조금씩 확장해 나가면 된다. 작가는 아들이 호감을 가졌던 학생이 전학을 가자 그 아이가 칠판에 꽃그림을 그리던 것을 흉내 내며 낙서한 것을 보며 그리움 등 감정은 같음을 이야기한다.
행동으로 말하는 발달장애인을 관찰해 보면, 문제행동은 말하는 중인 것이다. 감정을 자제하고 다른 방법으로 말하는 것을 익히지 못했을 뿐이다. 발달장애인의 장점이 투명하다는 것인데, 거짓말을 못해도 말로 가리는 행동은 한다. 곤란한 상황에서 목마른 듯이 물을 요구하는 행동이 그렇다. 눈으로 행동을 읽어야 한다.
스스로 하기를 지지해 주고 절제를 역할과 책임을 통하여 생활화해야 한다.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는 보호는 배제이다. 정신적 에너지가 자극되어 상당히 일상생활에 진전이 있을 시기에 작가의 아들도 코로나로 인해 다시 퇴행되고 말았음도 이야기한다.
장애인이 어릴때에는 부모가 사람들로부터 주어지는 혐오를 느끼지만, 직접 혐오를 느끼고 감당해야 하는 시기가 성인기이다. 성인이 되면 치료실도, 놀이공간도, 복지관 프로그램도 참가하기 어려워지면서 갈 곳이 없게 된다. 그리고 학교도 학습 진도 뽑기에 의해 중증장애인은 고립이 된다. 돌봄에서 학습으로 방향이 바뀐다. 그래서 학교에서 잠자는 루틴이 생기면 집에서도 자는 루틴이 작동된다.
놀이도 직업훈련이 된다. 음성언어 중심의 학습은 말을 하지 못하는 중증장애인에게 무기력감을 줄 뿐이다. 현장학습과 체험교육, 공동작업 등을 통해 수학이나 언어, 자연 등을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 사회 나가서 필요한 요소는 교실이 아니라 사회 안에 있다.
작가는 공진하 작가가 쓴 책에서 같은 것 고르기를 수행하지 못하는 아이가 기숙사에서 세탁물을 잘 정리하는 것을 인용하면서 교실에서의 수업은 사회로 전이되지 않지만, 생활참여 학습은 그 자체가 전이된 사회성 교육임을 강조한다. 이것이 일반화이다. 특히 자립생활은 능동적으로 익혀야 한다. 기능적 발달단계로 세월을 보낼 것이 아니라 생활적응은 이 단계를 얼마든지 뛰어넘음을 실례로 들고 있다.
작가는 2024년부터 ‘일상생활활동’이 정식 교육시수로 들어갔음을 환영한다. 학교에서는 자립을 위해 개별화와 참여, 취업, 어울려 사는 법 등을 학습시켜야 한다. 80퍼센트 이상이 따라가지도 못하는 교과학습은 의미가 없다. 현재의 교육 시스템은 개별화가 불가능하다 등을 작가는 주장한다.
작가는 아들을 위해 다시 무력감을 털고 일어선다. 가족 캠핑, 수영, 자조 모임, 심리 활동 운동 등에 참여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방해되는 행동 때문에 하지 못했던 영화관 가기도 시도한다. 아무것도 버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며 작가는 아들의 자립생활을 꿈꾸며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고심하고 있다.
발달장애인이 모든 사람에게 공격적이지는 않다. 그러면 그렇지 않은 사람이 되면 된다. 이제 자립을 위해 지역사회가 인식을 달리해야 하는 것은 제도보다 먼저일 것이고, 학교는 생활은 가정의 문제로 돌릴 것이 아니라 자립을 위해 학교가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학교는 중증장애인에게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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