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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 갇힌 6개월, 딸은 다시 아기가 됐다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 1,436회 작성일 20-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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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단계의 풍경 ①] 발달장애인의 유일한 생명줄 복지관이 문닫자.. "아이는 퇴행"

[신나리 기자]

▲ 김현숙씨 27일 오후, 김현숙씨를 만났다. 현숙씨는 "코로나 이후 발달장애인인 딸이 심각하게 퇴행됐다"라고 했다.
ⓒ 신나리
 
활동지원 선생님에게 온 전화 한 통에 김현숙(56)씨가 냅다 차를 몰았다. 집에 경찰 두 명이 와 있었다. 현숙씨의 딸, 오은아(가명, 25)씨가 소리를 지르며 집 안을 걸어 다녔다. 화분은 거실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경찰은 만약의 상황을 대비했다며, 집안의 칼과 가위를 모두 치웠다. 은아씨는 뭐가 맘에 들지 않은지 내내 소리를 질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랬다. 활동지원 선생님과 은아씨가 산책을 했는데, 자꾸 은아씨가 찻길로 뛰어들었다. 선생님이 안 된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도전적인 행동이 드러났다. 결국 활동지원 선생님이 경찰을 불렀다. 경찰은 은아씨를 집에 바래다줬다. 집에 도착한 은아씨는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못한 것에 화가 났는지 소리를 질렀다. 문을 잡아당기고 부수려고 했다. 화분을 엎지르고도 분이 풀리지 않는 듯했다. 자꾸 밖에 나가려 했다. 다시 경찰이 출동했다.

"25년 동안 키우며, 처음 본 모습이었다"
 
▲ 은아씨의 시간표 현숙씨는 도전적 행동이 심해진 은아씨에게 어느 요일에 누가 데리려 가는지 매일 설명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은아씨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 신나리
 
27일 서울시 노원구 중계동 자신의 집에서 만난 현숙씨는 "25년간 은아를 키우며 보지 못했던 모습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원래 이 정도는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현숙씨가 말한 '처음 본 은아씨의 모습'은 지난 2월 코로나19로 은아씨가 다니던 복지관이 문을 닫은 후 드러난 도전적인 행동을 뜻한다.

엊그제만 해도 은아씨는 '쉬가 마렵다'면서 길에서 옷을 벗고 오줌을 쌌다. 주유소에서 눈깜짝할 사이에 생긴 일이었다. 코로나 전, '엄마, 나 화장실 가고 싶어'라고 말했던 은아씨는 어느새 의사 표현을 하기보다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 상관없이 자기 욕구대로만 행동하려 했다.

은아씨가 변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매일 반복적으로 하던 복지관의 프로그램들은 은아씨를 더 나빠지지 않게 잡아주었고, 은아씨가 스스로를 자제할 힘을 키워줬다. 그런데 코로나19로 복지관이 문을 닫았다. 은아씨가 하나씩 배우던 생활지능은 한순간에 무너져버렸다. 엄마 현숙씨는 "발달장애로 지능은 세 살도 안 되지만, 생활지능은 달랐다, 은아는 혼자 속옷을 챙기고, 양말을 신고 옷을 입을 수 있었다"면서 "지금은 옷이든 신발이든 제대로 입고 신지 못한다"라고 은아씨의 상태를 설명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정부는 지난 12일부터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를 1단계로 조정했다. 전국 유흥주점·뷔페·대형학원·노래방·피트니스 등 고위험시설 10종 영업이 가능해졌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비수도권에서는 실내 50명 이상, 실외 100명 이상 집합이나 모임·행사를 허용하고, 수도권에선 자제를 권고했다. 지역 복지관의 문이 열린 것도 이즈음이다.

사실 은아씨는 운이 좋게 조금 더 빨리 복지관을 이용할 수 있었다. 지난 8월부터 해당 복지관이 중증 발달장애인을 1대 1로 돌보는 프로그램을 운영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복지관에 다닌 지 2개월이 됐지만, 아직 은아씨에게는 집에서 갇혀 지낸 6개월이라는 시간의 흔적이 남아있다. 자폐 증상은 심해졌고 욕구불만, 퇴행적·도전적 행동은 늘어났다.

이종성 국민의 힘 의원실에 따르면 9월 8일 기준 장애인복지관 주간보호시설 1033곳 가운데 80%에 달하는 822곳이 휴관했다. 이후 코로나가 1단계로 하향조정되자 하나둘씩 복지관이 문을 열었다. 다만, 코로나를 염려해 축소 운영하거나 개관을 미룬 곳도 있었다. 복지관의 사정도 모를 바 아니었다. 방역과 감염 모두를 신경써야 하고, 살피기 어려운 중증장애인의 경우 더 주의를 기울여야 했던 것도 맞다.

하지만 발달장애인은 복지관 외에 대안이 없는 이들이다. 주로 지역 복지관이나 주간보호센터 등을 통해 지원을 받았는데, 한순간에 센터가 문을 닫았다. 나머지는 오롯이 가족의 몫이었다. 코로나 장기화로 발달장애인 가족들이 겪는 어려움과 스트레스는 날이 갈수록 심화될 수밖에 없었다. 발달장애인의 퇴화와 더불어 가족들의 우울증세도 심각한 수준에 다다른 것이다.

지난 6월, 광주광역시 외곽의 한적한 농로에 주차돼 있던 승용차에서 60대 어머니와 20대 아들이 숨진 채 발견됐다. 아들은 심한 자폐성 장애가 있는 발달장애인이었다. 지난 3월에도 제주 서귀포에서 한 40대 어머니가 10대 발달장애아들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현숙씨는 "광주 발달장애인의 경우 아이가 소리를 너무 질러 아파트 주민의 민원에 시골로 이사를 갔는데, 거기서도 민원이 들어왔다더라"면서 "정말 아무 데도 오갈 곳이 없다는 마음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거다, 나는 그 맘을 안다"라고 말했다.


문 닫은 복지관, 심해지는 퇴행                     
▲ 현숙씨와 은아씨의 집 현숙씨의 집에는 2~3살 아이 키우는 집에나 있을 매트리스가 깔려있었다. 책상이나 선반 위 등 은아씨의 손이 닿는 곳에는 아무것도 올려져 있지 않기도 했다.
ⓒ 신나리
 
현숙씨의 집에는 2~3살 아이 키우는 집에나 있을 매트리스가 깔려있었다. 책상이나 선반 위 등 은아씨의 손이 닿는 곳에 아무것도 올려져 있지 않기도 했다. 그래도 은아씨는 물건들을 자꾸 찾고 숨겨놨다. 어느날은 김치냉장고에서 옷이 나왔고, 신발장에서 물병을 찾았다. 접시와 숟가락이 세탁기에 있기도 했다.

은아씨가 고2 때, 같은반 남학생에게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었다. 은아씨는 한참을 힘들어했다. 감정조절을 하지 못했고, 자폐성향이 강해졌다. 누군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폭력으로 인식해 피해의식이 생기기도 했다. 정신과 상담을 받고 꾸준히 약을 먹으며 겨우겨우 하루를 버틴 날이 있었다. 그래도 코로나 때보다는 나았다.

"고2 때가 최악의 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지금처럼 아기가 돼서 퇴행한 정도는 아니었으니까요. 지금이 최악이에요. 그때는 신호등 빨간불에 건너지 않고, 파랑불에 건너야 한다는 건 알았어요. 지금은 막무가내예요. 차가 와도 그냥 걸어요. 주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거죠."

코로나 시기, 은아씨는 자꾸만 퇴행했다. 하지만 코로나는 종식되지 않았다. 여전히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두자리와 세자리수를 반복하며 나타나고 있다. 현숙씨는 다시 복지관이 문을 닫으면 어쩌나 가슴을 졸이고 있다. 또 다른 감염병이 나오면, 그때도 이렇게 복지관 문을 걸어 잠그는 수밖에 없는 걸까. 현숙씨는 '다른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래 주 5일 복지관에 갔다면 주 2~3회로 줄이거나, 오전·오후를 나누어 마주치지않게 하는 방법도 있잖아요. 발달장애인에게 복지관은 마지막 생명줄이에요. 무작정 오지 말라는 건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을 사지로 내모는 거예요."

사실 현숙씨는 '에너자이저'로 불리는 사람이었다. 은아씨를 돌보며 국가인권위원회 위촉인권강사(장애분야)로 일하고, 서울특별시 교육청의 학부모 전문강사이기도 하다. 장애인식개선교육을 하며, 내 딸 그리고 나의 딸과 비슷한 많은 장애인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서울시에 '발달장애인 6대 정책요구안' 수용을 촉구하며, 삭발한 적도 있다. 그런 현숙씨도 코로나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점점 비관적인 생각이 들어요. 내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내가 없으면 우리 은아를 제도가 보호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든 적은 처음이에요. 국가책임에 의해서 여러 보완책이 만들어지기도 했고, 점점 나아진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코로나 이후 모든 게 무너졌어요. 혹시라도 코로나가 다시 확산되면 그때도 복지관 문을 무조건 걸어잠가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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