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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8일 자폐인 긍지의 날', 자폐인이 진정 긍지로 살아가는 사회이길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 1,068회 작성일 24-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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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4월 2일은 ‘자폐인의 날’인데, 정확한 명칭은 자폐증 인식의 날(Autism Awareness Day)이며, 자폐인보다도 자폐인의 부모들, 관계자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성격의 날이라, 정작 주인공이 되어야 할 자폐인은 주변에 머무는 느낌이 짙다. 우리나라에선 그동안 자폐인을 돌봄만이 필요한 ‘권리 객체’ 성격이 짙은 ‘자폐인의 날’ 행사를 진행했기에, 필자는 이날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필자는 6월 18일 ‘자폐인 긍지의 날(Autistic Pride Day)’을 좋아한다. 이날은 자폐인 스스로 자존감과 자긍심을 드러내며, 당사자 주도로 자폐성 장애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도모하는 날이다. 영국과 호주에선 당사자와 가족들이 기념행사 뒤 공원 등에서 피크닉을 가지는 등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다. 우리나라도 올해 역시 ‘자폐인 긍지의 날’ 기념식을 가졌다.

신경다양성 지지단체 세바다와 자폐성 장애인 자조모임 estas에선 코로나가 슬슬 풀려가던 2년 전부터, 기념식을 치르기 시작했다. 그때는 온라인으로 기념식을 가진 후 시간 있는 사람들끼리 같이 공원에 모여 우리의 자긍심을 가지는 모임을 가졌다. 작년엔 자폐인 개인 각자가 느끼는 긍지는 무엇이냐는 제목으로 행사를 가졌고, 부대행사로 공원에서의 피크닉 모임도 있었다.

올해도 estas, 세바다가 공동으로 지난 6월 15일 오후 2시 이룸센터 이룸홀에서 ‘자폐인 긍지의 날’ 기념식을 주최했다, 먼저, 공동주최 단체 estas와 세바다에서 개회사를 했다. estas 윤은호 조정자는 우리 사회에서 자폐인의 잠재력을 ‘발달장애’란 틀 속에 가두는 게 안타깝고, 자폐 담론에서 늘 자폐인은 배제됐지만, estas가 제시한 대안이 자페인 포함한 대한민국 시민에게 도움 될 거란 확신이 있어 멈출 수 없다며, estas의 발걸음에 함께 해달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세바다의 조미정 대표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준비 멘트 없이 즉석에서 개회사를 전했다. 올해도 ‘자폐인 긍지의 날’ 기념식을 치를 수 있어 기쁘고 자폐인의 권리는 시시각각 침해당함을 기억하며, 자폐성 장애인의 기본권 보장과 자유 향유를 위해 대안을 함께 찾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후 후원단체인 위키미디어협회 진주완 이사장의 축사가 있었다.

바로 직후엔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과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의 영상 축사가 있었다. 김예지 의원은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에 제출한 자폐대안보고서 국문보고서 내용 공개 및 자폐인 정책 제안 등을 하는 의미 있는 자리라며, 자폐성 장애인 당사자가 자긍심을 갖고 지역사회에서 활동을 펼치는 마중물이 되길 기대한다는 내용으로 축사를 전했다.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과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자폐인 긍지의 날’을 맞이하여 영상 축사를 보낸 모습. ⓒestas
그다음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은 많은 분들의 헌신 속에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이해와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높아질 수 있었지만, 대한민국 사회엔 자폐에 대한 무지와 편견이 뿌리 깊고, 특히 정치권의 자폐성 장애 몰이해는 자폐인을 배제하는 정책·제도로 이어져 자폐인의 존엄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음을 말했다.

이어 용 의원은 22대 국회는 자폐인의 존엄을 보장하는 제도적 개선을 위해 힘써야 한다며, 자폐 스펙트럼은 결함이 아닌 다양성과 자긍심으로 여기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하며, 축사를 전했다.

모든 축사가 끝난 후 지난 1년 동안 estas와 세바다의 활동을 돌아보는 영상을 시청했다. 바로 다음 필자는 2년 전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에 제출한 자폐대안보고서를 국문으로 재번역한 내용을 소개했는데, ▲발달장애인법의 폐해, ▲자폐인을 권리 객체로 전락시키는 발달장애인 정책 등 자폐인의 권리 현실과 당사국의 제2·3차 보고서에 대한 자폐인 논평 내용을 중심으로 소개했다. 아울러 자폐 대안보고서 내용 중 장애인권리위원회 최종견해에 반영된 내용도 설명했다.

내용 소개가 끝난 후 estas의 전용현 회원과 세바다 회원이 나와서 두 단체가 공동으로 만든 자폐인 권리 선언문 낭독이 있었고, 마지막 세션으로 윤은호 조정자가 자폐인 정책 제안을 발표하는 자리를 가졌다. ▲‘자폐증’, ‘자폐아’ 등 자폐인 차별용어 삭제, ▲신경다양성, 농문화 등 장애문화 개념을 장애인식개선교육에 추가, ▲자폐인 학교폭력 대책 수립, ▲위치추적장치 부착 시 국제인권법 기준 준수 등의 정책 제안 내용을 발표했다. 이로써 ‘자폐인 긍지의 날’ 기념식 본행사가 종료됐다.

10분 정도 휴식 후 한국 위키미디어협회 진주완 이사장이 ‘자폐인 긍지의 날 에디터 톤’ 행사를 진행했다. ‘자폐인의 사회 참여’ 관련 위키백과 문서를 만드는 것을 예로 들며, 자폐성 장애인 당사자의 경험을 직접 쓰는 것보단 논문이나 공신력 있는 언론매체의 보도와 동영상 등을 이용해 각주를 다는 식으로 그 경험에 대한 자료를 작성함과 동시에, 반드시 팩트체크를 해야 함을 진 이사장은 강조했다.


한국위키미디어협회 진주완 이사장이 ‘자폐인 긍지의 날 에디터 톤’ 세션에서 ‘자폐인의 사회 참여’에 대한 위키백과 편집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들. ⓒ이원무
모든 행사가 끝나고 난 뒤엔 위키미디어협회 관계자들과 세바다 회원, estas 회원들과 함께 치킨집에서 식사하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여러 가지 수다와 잡담을 했다. 시간을 보내며 위키미디어협회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회원들끼리 유대감을 쌓을 수 있는 것이 좋았다.

행사는 끝났지만, 나로선 많은 느낌이 드는 시간이었다. 먼저 자폐인 권리 선언문을 낭독했을 때 사실 마음속에선 기쁨이 있었다. 저번 ‘자폐인의 날’ 당사자 공동선언엔 자폐인이 돌봄의 객체라는 뉘앙스를 많이 느꼈기에 이를 참고해, 어떻게 하면 장애인권리협약 등 국제인권법에 맞게 자폐성 장애인이 권리 주체임을 선언하는 내용을 만들까, 윤 조정자와 세바다 관계자들, estas 회원들과 함께 고민해야겠다고 느꼈다.

윤 조정자와 내가 함께 논의하며, 자폐인의 권리 증진 방안을 화이트보드에 쓰고는, 이를 바탕으로 자폐인 권리 선언문 초안을 만들었다. 세바다 관계자들과 estas 회원들은 초안들을 보며 함축적이지만 효과적이고 권리에 기반한 표현들을 제시했는데, 아이디어들이 상당히 좋았다. 그래서 선언문을 만드는 게 많이 신났고, 이래서 함께 하는 게 위대함을 다시금 느꼈다. 함께 한 것이기에 자폐인 권리 선언문 발표 시 기뻤다.

필자가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에 제출한 자폐대안보고서의 국문 재번역 내용을 소개했을 땐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보고서 내용 중 지적·자폐성·심리사회적 장애인의 자유롭고 고지된 동의 없이 위치추적기 발부에 대해 장애인권리위원회 최종견해에 우리 보고서 내용이 거의 그대로 들어갔던 걸 생각했을 땐 보람을 느끼고 감사한 감정이 들기도 했지만, 당시 당황했던 감정도 떠올랐다. 

당시 장애인권리위원회와 필자가 소속된 정부심의 연대 간의 비공개 브리핑 때 필자는 위치추적기 발부 현실을 알렸는데, 이에 대해, 과테말라 출신의 로사 알다나 위원이 이게 성인 장애인에게도 해당되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이에 대해 필자는 버벅거리며 대답했기에, 정보가 잘 들어가지 않았단 느낌에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자폐인 등 정신적 장애인 인권침해 현실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로사 위원에게 이 이슈에 대해 30분 ~1시간 정도를 설명했다. 상당히 바빴는데도, 나의 말을 귀 기울여 들으려는 위원님의 자세에 정말 감사했다.


필자가 2년 전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에 제출했던 자폐대안보고서를 다시 국문으로 재번역한 보고서 내용을 소개하려는 모습. ⓒestas
이후 윤 조정자와 발달장애인 지원조례를 봐가며, 자유롭고 고지된 동의 없는 위치추적기의 발부는 성인 장애인에게도 해당된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로사 위원과 우리나라 정부심의 보고관인 게렐 위원 등에게 위기추적기 발부에 대한 정보를 보충해 제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 정부심의 때 로사 위원이 자유롭고 고지된 동의 없는 위치추적기 발부에 대한 관련 정보를 달라고 했지만, 정부는 실종아동에 대해서만 위치추적기를 발부한다는 다소 부족한 대답을 했다.

정부심의 첫날 세션 이후 연대에서의 회의를 통해 동의 없는 위치추적기 발부는 인권침해 아니냐는 식으로 정부에 재차 질의하자는 결정을 연대 측에서 내렸고, 나도 이에 대해 적극 동의했던 것으로 안다. 위원회에 그 질의는 보내졌고, 다음 날에도 가나 출신의 거투르드 페포아메 위원은 자유롭고 고지된 동의 없는 위치 추적기 발부는 인권침해 아니냐며 여기에 대한 정보를 달라고 정부에 재차 질의했고, 두 위원도 같이 질의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부는 대답을 회피했고, 결국 우리 보고서 내용이 최종견해에 그대로 실려졌다. 내 소속 자조모임과 세바다가 함께 논의한 내용이 단독으로 22조 최종견해에 채택된 거였기에 보람을 느꼈고,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지려 한다. 그런데, 2년이 지난 현재 아직도 보호자 동의만으로 위치추적기를 발부하려는 현실을 뉴스로 종종 접하니 한편으론 우울감이 든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 대중들 등의 협약 몰이해로 그런 거라 여기고, 앞으로 동료들과 함께 다시 열심히 하며, 우리의 요구를 강력하게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폐인 정책 제안을 들으면서는 22대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의 손에 의해 반드시 실현되었으면 하는 제안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표적으로 ‘자폐증’, ‘자폐아’라는 어휘는 장애를 고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고, 자폐인을 어린아이 취급하는 등, 자폐성 장애인을 권리의 객체로 묘사하는 차별적 표현이라 반드시 폐지함은 물론, 국립국어원과 통계청에겐 장애인권리협약에 대한 훈련수준의 정기적인 교육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본다.

또한, 장애인식개선교육에 신경다양성, 농문화 등 장애문화에 대한 교육이 들어가야 한다는 제안은 장애를 다양성으로 보는 일환이라 반드시 실현했으면 하는 제안이다. 장애인권리협약도 다양성을 중시하는 협약 중 하나라, 이 제안이 반영돼, 장애문화를 훈련수준으로 교육한다면 우리 사회가 혐오를 지양하고, 다양성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좀 더 다가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긴다.


자폐성 장애인 당사자들이 자폐인 권리 선언문을 발표하는 모습(좌측), estas 윤은호 조정자가 국회의원들에게 제안할 자폐성 장애인 정책제안들에 대해 발표하는 모습(우측). ⓒ이원무
마지막으로, 에디터 톤 작업과 관련해 공신력 있는 정보를 위키미디어 정보에 넣는다고 방금 전에 언급했는데, 필자는 그 이유에 대해 물어봤다. 그랬더니 진 이사장은 사람들이 장애인의 생생한 경험을 직접 믿기보단 그걸 공신력 있는 매체나 논문을 보며 믿으려는 경향이 많기에, 그런 거라고 대답했다. 그걸 들으니 장애 등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고 혐오하며, 증거를 통해서만 겨우 믿는 많은 사람들의 심리를 느꼈기에 씁쓸한 기분이었다.

한편으론 자폐인의 권리를 위한 에디터 톤 작업에 관련해 합리적이고, 공신력 있는 정보와 증거들을 많이 올리다 보면, 자폐성 장애인에 대해 객관적으로 알면서 혐오하는 것이 점점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기기도 한다. 근거가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걸 위해서 필자도 할 게 있으면 해야겠단 마음가짐을 가져본다.

이렇게 ‘자폐인 긍지의 날' 기념식을 느끼며, 그 이후의 시간을 보냈지만, 우리나라의 자폐성 장애인들이 아직도 권리 객체에 머무르는 현실은 여전하다. 자폐성 장애는 뇌의 다양성에서 온다는 걸 모른 채 행동 치료만으로 행동을 고치겠다는 ABA 치료 등이 우리 사회에 팽배하고, 주호민 사태와 관련한 자극적 보도 속에 자폐성 장애 학생은 분리해야 한다. 시설에 가두어야 한다는 혐오 발언 속에 자폐인을 혐오하는 감정이 이전보다 더욱 만연하다.

국제적으론 2년 전 신경 다양성을 존중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자폐성 장애 치료와 자폐인 중재를 강조하고, 자폐인 권리 증진을 위한 합리적 변경(Reasonable Accommodation) 등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는 등 자폐인의 권리 침해 우려가 있는 란셋 보고서가 게재됐다. 이에 estas를 비롯해 유럽 자폐인 협의회 등에서는 차별, 학대, 사망요인, 정신보건 접근성 증진 등의 자폐연구 수립이 중요하고 자폐인 당사자들이 연구 윤리성을 감시하도록 보장할 것을 란셋 위원회에 공개서한으로 요구한 적이 있었다(출처: ‘자폐 치료’ 행보에 세계 자폐당사자 뿔났다, 에이블뉴스 2022년 2월 15일 기사)


자폐 친화적인 듯하지만, 실제로는 자폐성 장애인 행동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지적 사기 형태의 Lancet 논문 중 일부. ⓒLancet
얼마 전엔 ‘뉴로 리얼리즘(Neuro Realism)’이란 용어가 호주의 주디 싱어(Judy Singer)에 의해 주창되기도 했다. 수영할 수 없는데 바다로 가게 되면 익사할 것이라며, 그와 같은 게 리얼리즘이라고 싱어는 말한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필요를 경험하기에, 이들의 실제 필요를 충족시키는 목표를 하는 게 뉴로 리얼리즘에서 필요한 것이라며, 낙천적인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과 반대되는 개념이 뉴로 리얼리즘임을 그녀는 설명한다.

아울러, 자폐성 장애 인구의 약 30%에 영향을 미치는 심한 손상(Impairment) 감추는 건 아니라는 식으로 그녀는 뉴로 리얼리즘에 대해 설명한다. 그러니까 신경다양성 개념을 통해 자폐성 장애인의 다양성에 집중한 채 심한 손상을 감추는 건 아니란 입장인 거다. 돌봄 요구가 큰 장애인의 입장을 고려하라는 부모의 요구가 뉴로 리얼리즘이란 용어 속에 녹아있다고 볼 수 있다.

신경다양성 개념이 주로 고인지 자폐성 장애인 등을 중심으로 논의됐기에, 뉴로 리얼리즘 용어를 고안했던 싱어가 이해되는 면이 있긴 하다. 하지만 한편으론 뉴로 리얼리즘이 신경다양성에 비해 다양성보다 손상을 좀 더 강조하기에, 자폐인의 권리 측면에선 조금은 후퇴되고 오히려 자폐인이 권리의 주체 아닌 돌봄 객체로 전락시키는 동력을 제공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긴다.

이렇게 자폐인은 권리 주체는커녕 권리의 객체이며, 치료·돌봄·혐오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강력해 자폐인을 둘러싼 현실은 그리 낙천적이진 않고 오히려 굴욕적이고 잔인하기만 하다. 과거에도 이와 같은 현실이었기에, 필자도 자폐를 고치려 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정신적으론 우울해지며 나 자신을 잃어버렸다. 물론 장애 개념을 접하며, 자폐는 고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지만 말이다. 

더구나 자폐성 장애는 말 그대로 장애이자 다양성이다. 그래서 필자는 신경다양성이라는 개념을 지지한다. 다만 사람이라는 게 원래 돌봄은 어느 정도 필요하기에 자폐성 장애인 등 장애인이 권리 주체로 설 수 있도록 돌봄을 어떻게 연관시킬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겠다. 그게 앞으로 자폐성 장애인 등에게 놓여진 과제라고 볼 수 있겠다.

우리 자폐인들은 권리 주체이고 싶고 그래야 한다. 그러기 위해 자폐성 장애인 등 장애인이 정책·사회 참여 시 배제되지 않고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공식통로를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마련하고, 그러기 위해 정부 밎 지자체에 장애인권리협약 이행과 장애의 인권적 모델로의 사회 패러다임 전환 등을 위한 구체적이고 중장기적인 행동계획과 실행 의지가 필요함을 다시금 말하고 싶다.


호주의 배우인 클로에 헤이든(Chloe Hayden)의 자서전 ‘Different, Not Less’ (다르지만 열등하지 않습니다)의 책 표지(좌측) 및 책에 대한 독자 평가(우측). ⓒAmazon, Chloe Hayden 홈페이지
그리고, 자폐성 장애인 당사자가 자신의 시각으로 삶을 이야기하는 자서전들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 호주에선 얼마 전 자폐성 장애인이자 배우인 클로에 헤이든(Chloe Hayden)이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나눈 ‘Different, Not less(다르지만 열등하지 않습니다.)’이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게재한 바 있다. 클로에 외에도 자서전을 낸 자폐인들이 호주에서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영국, 미국 등지에서도 자폐성 장애인들의 자서전들이 여러 개 있다.

내가 소속된 자조모임 내에서도 자서전을 준비하고 있는 동료가 있다. 그 동료는 주로 직장생활과 자신의 취미 등을 중심으로 자신의 삶에서 겪었던 차별, 어려움 및 삶의 기쁨 등에 대해 자서전에서 기술하려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런 자서전들이 우리나라에 많아진다면, 자폐성 장애인이 사회에서 겪는 차별과 어려움을 알게 되는 독자들이 많아지기에, 장애인식 제고에 도움이 많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외국처럼 자폐인들이 직접 쓴 자서전이 하나도 없기에, 그 동료가 준비하려는 자서전이 반드시 나왔으면 좋겠다. 나 자신이 글을 잘 쓰는 편은 아니라고 느끼지만, 그래도 쓸 기회가 생긴다면 나의 삶에서 경험한 차별, 기쁨 등을 다룬 자서전을 쓰고 싶고 꼭 그렇게 되길 바라는 심정이다, 만약 쓰게 되면 특히 신경 전형적 사회, 다시 말하면 비장애 중심 사회가 자폐성 장애인인 나의 삶에 끼친 해악에 대해선 생각날 때 기억을 되살려 꼭 쓰고 싶다.

신경 전형적 사회가 자폐성 장애인의 삶에 끼친 해악 얘기가 나왔으니까 말인데, 자서전 등의 방법이 아니더라도, 자폐인들이 강사로 참여하며 이런 얘기들을 하는 게 장애인식개선교육에 반드시 포함되었으면 한다. 치료감호소나 장애인거주시설, 정신요양시설, 정신병원 등에서 생존한 자폐성 장애인 생존자들의 경우엔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이런 시설들이 이들에게 지속적으로 주는 사회적 해악에 대해 이들이 증언하며 교육하는 과정을 구상해 실행했으면 한다. 이들에게 의사소통 지원이 필요한 경우라면 지원하며 이들이 증언하거나 교육할 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

그래서 이런 것들이 모여, 결국엔 자폐성 장애인이 사회에서 자신의 다양성을 존중받으며 진정 긍지를 갖고 매일매일을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길 간절히 바라는 바다. 그런 바람을 이번 ‘자폐인 긍지의 날’을 맞이하며 다시금 가져본다. 마지막으로 stas와 세바다가 함께 만들고, 이번 '자폐인 긍지의 날' 기념식에서 당사자들이 외쳤던 자폐인 권리 선언문을 인용하며, 글을 마치겠다.

1. 자폐인은 시민으로서 다른 사람과 똑같은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2. 자폐인은 자폐 특성을 이유로 부당하게 평가받지 않으며, 자신의 실수와 잘못에 당당히 대처한다.

3. 자폐인은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비롯한 참정권을 보장받으며, 모든 정책 결정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

4. 자폐인은 자기결정권을 가지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으며, 무발화 소통 등에 필요한 합리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

5. 어느 누구나 자폐 특성과 신경다양성을 발견하고자 하는 사람은 지능 정도와 관계없이 자신의 상태를 진단받고, 그 비용을 지원받을 권리가 있다.

6. 자폐인은 타인의 영향을 받지 않고, 정신건강상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상담받으며, 약 복용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가진다.

7. 자폐인은 시설이 아닌 곳에서 스스로의 선호, 의지에 따라 가정 구성권과 거주 이전의 자유, 이동권과 사생활을 보장받는다.

8. 자폐인은 자신의 선호, 흥미, 적성, 욕구에 기반한 교육 지원을 통해 통합교육, 고등교육 등에 접근할 권리가 있다.

9. 자폐인은 모든 기술자격에 접근하고 괜찮은 일자리에 취직할 권리가 있다.

10. 대한민국 정부는 자폐인이 편견과 낙인을 받지 않도록 자폐혐오를 철폐할 의무를 지닌다.

11. 자폐인은 안정을 벗어나 도전하고, 실패했을 때 재시작에 필요한 지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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