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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기사

편의시설 차별 앞에 선 장애인의 비애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 1,202회 작성일 24-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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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에, 토끼와 거북이가 살고 있었다. 토끼는 매우 빨랐고, 거북이는 매우 느렸다. 어느 날 토끼가 거북이를 느림보라고 놀려대자, 거북이는 자극을 받고 토끼에게 달리기 경주를 제안하였다. 경주를 시작한 토끼는 거북이가 한참 뒤처진 것을 보고 중간에 낮잠을 잤다. 토끼가 잠을 길게 자자 거북이는 토끼를 몰래 지나쳐서 골인 지점에 도달했다. 잠에서 깬 토끼는 거북이가 자신을 추월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허겁지겁 뛰어가 보지만 결과는 이미 거북이의 승리였다.

‘토기와 거북이’에서 토끼는 거만하고 게으른 나쁜 사람이고, 거북이는 부지런하고 성실한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천천히 노력하는 자가 승리한다"라는 교훈을 가르쳤다. ‘토기와 거북이’는 능력보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가르치던 개천에서 용 나던 시절의 우화이다.

토끼와 거북이는 신체 구조부터가 전혀 다른데 어떻게 경주를 한다는 말인가, 처음부터 게임이 안 되는 불공정한 게임인데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내용이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인류에 회자하는 동화로 남게 되었을까.

‘토기와 거북이’는 이솝우화로 알려져 있다. 이솝우화란 고대 그리스의 아이소포스가 지은 우화라고 하는데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의하면 아이소포스는 기원전 6세기경에 살았던 노예였다고 하는데 이야기를 잘했다고 한다.


KBS 만화 ‘토끼와 거북이’. ⓒKBS
토끼와 거북이의 달리기는 게임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내용이다. 가끔 사람들은 평등과 평균을 같은 뜻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토끼와 거북이는 이렇게 달리기를 해서는 안 된다. 토끼와 거북이가 함께 하는 평등이 되려면, 거북이는 죽었다 깨어나도 긴 다리로 뛰어다니는 토끼를 따라잡을 수 없다. 따라서 토끼가 자세를 낮추어 거북이걸음에 보조를 맞추면 함께 평등하게 어깨동무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토끼와 거북이가 경주를 하는데 토끼는 긴 다리로 껑충껑충 뛰어갈 수 있었겠지만, 거북이가 가는 길이 과연 순탄했을까? 거북이가 가는 길 앞에는 산도 있고 강도 있고 나무도 있고 돌도 있는 등 무수히 많은 장애물이 있어서 거북이가 제대로 갈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가 말도 안 되는 어이없는 경주이지만, 만약 토끼와 거북이가 경주를 한다고 하면 거북이가 가는 길을 평평하고 순탄하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거북이도 이용할 수 있게 하여 주는 보편적인 건축 등을 유니버설 디자인이라고 한다.


턱 없이 평평한 건널목. ⓒ이복남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이 ‘모든 사람을 위한 디자인(Design for all)’ 혹은 ‘보편적 디자인’으로 불리며, 연령, 성별, 국적, 장애의 유무 등에 관계없이 누구나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건축, 환경, 서비스 등을 계획하고 설계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유니버설 디자인이 아니라 두 다리로 뛰고 달릴 수 있는 비장애인을 위한 건축 설계가 더 많다. 그러나 최근에는 편의시설 내지 유니버설 디자인에 대해서 알고 있는 장애인이 많다. 그래서 장애인 편의시설이나 유니버설 디자인이 되어 있지 않으면 장애인은 화가 난다. 법에도 있는데 왜 법을 지키지 않으냐고 말이다.

지난 4월 10일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일이었다. 부산 기장군 정관읍 정관 LH4단지에 살고 있는 A 씨도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사실 어찌 보면 군더더기 같은 말이지만 오랫동안 목발을 짚거나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 대부분은 어깨 회전근개가 많이 닳아서 항상 아픔을 견디며 생활하고 있다. 더구나 중증장애인은 생활 자체가 전쟁 같은 나날이다.


15cm의 턱이 있는 건널목. ⓒA 씨가 보내 준 사진
그러나 장애인도 국민의 한 사람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전쟁 같은 하루를 뚫고 일어나서 4월 10일 11시 30분경 휠체어를 타고 집을 나섰다. 정관 LH4단지에는 가운데 어린이 놀이터가 있고 그 끝에 행정복지센터가 있는데 투표소는 행정복지센터에 있었다.

그런데 어린이 놀이터에서 연결된 행정복지센터로 가려면 15cm 정도의 턱이 있었다. A 씨는 휠체어를 이용하기 때문에 15cm 턱은 넘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 행정복지센터 투표소로 가는 길에는 임시경사로를 설치하므로 A 씨는 한 번도 투표를 거른 적이 없기 때문에 짜증이 났다.

투표하러 나왔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왼쪽으로 200m쯤 돌아가면 도로와 평평하게 맞닿은 곳이 있으므로 그쪽으로 돌아서 갔다. 일단은 투표소에 가서 투표를 했다. 그리고 책임자를 찾아서 투표소로 오는 어린이 놀이터 너머에 왜 경사로를 설치 안 했느냐고 물었다.

투표소 책임자라는 B 씨는 정관읍사무소 6급 공무원이었는데 사람이니까 실수할 수 있는 거 아니냐며 되레 큰 소리로 짜증을 냈다. A 씨도 소리를 지르고 옥신각신 한참을 실랑이하다가 기쁘게 투표하러 간 마음과 몸은 엉망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A 씨가 전화번호를 남겨 놓았기에 오후 1시쯤에 선관위 직원이라며 전화를 했다. 그 사람은 죄송하다며 경사로는 설치했다고 했다.


턱에 설치된 임시경사로. ⓒ이복남
투표 다음 날인 4월 11일 A 씨가 필자에게 전화를 했다. 아직도 어제의 분이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문제는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러 온 선거인을 대하는 투표소의 책임자라는 B 씨의 안하무인 처사에 필자도 어이가 없었다.

세월이 변해서 장애인의 의식은 저만큼 앞서가는데 아직도 비장애인들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19세기에 머물러 있는 모양이다. A 씨가 투표하러 가는 길에 경사로를 설치하지 못했다면, A 씨가 와서 경사로 이야기했을 때 “미안합니다. 깜빡하고 못 챙겼는데 지금이라도 설치하겠습니다.”라고 했으면 조용히 끝났을 일을 서로가 기분만 상하고 판을 키운 것 같았다.

어떻게든 A 씨의 기분을 풀어 주어야 할 것 같아서 정관읍사무소로 전화를 해서 B 씨를 찾았다. 없었다. 어제 근무한 사람은 오늘은 비번인 모양이었다. 전화를 받은 C 씨에게 필자를 밝히고 어제의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C 씨가 자기는 잘 모르지만, B 씨에게 전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 C 씨가 전화해서 어제 다 끝났으니 그런 이야기는 선관위에 하라고 했다.

B 씨가 A 씨에게 찾아가거나 전화로라도 어제는 너무 바빠서 죄송했다고 사과 한마디만 하면 끝날 것을, 필자가 선관위에 전화를 해 보니 선관위도 쉬는 날인지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임시경사로. ⓒ이복남
그래도 필자가 A 씨의 기분은 풀어 줘야 할 것 같아서 A 씨에게 전화해서 그간의 경과 상황을 이야기했다. 필자가 그쪽 상황은 잘 모르지만 그런 정도라면 평소에도 경사로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왜 임시경사로냐고 물었다. 행정복지센터는 2층이지만 엘리베이터가 있다고 했다.

몇 번이나 LH관리사무소에 건의를 했고 심지어는 진주에 있는 LH본사에도 이야기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곤란하다면서 안 해 준다고 했다.

왜? 무엇 때문에 안 해 주는 이유가 뭘까. 그렇다면 제가 한번 가 보겠습니다. 하필 필자가 차편을 예약한 날에 A 씨는 다른 지방에 가야 한다기에 만나지는 못했다.

필자가 갔을 때도 문제의 경사로는 그냥 있었다. 임시경사로가 있는 곳에 경사로를 충분히 설치할 수 있는 것 같은데 왜 안 된다고 하는 것일까? 가운데를 높여서 양쪽으로 비스듬히 횡단보도를 설치할 수도 있을 것 같았고 방법은 생각해 보면 여러 가지가 있을 것 같았다.


왼쪽 주차장 가운데 설치된 건널목. ⓒ이복남
행정복지센터 왼쪽에는 주차장인데 주차장 가운데 사람들이 다닐 수 있도록 주차금지봉을 세워 놓았다. 다리가 불편하지 않다면, 휠체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건너 다닐 수 있는 길이었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어디까지 돌아가야 한단 말인가. 필자가 LH4단지를 다녀왔는데 왼쪽 주차장 옆에도 사람이 다닐 수 있는 통로가 있다고 했더니, 15cm정도는 알아차릴 수가 있어서 그길로 안 다니지만 턱이 4~5cm 정도 되는 곳도 있어서 그 길에 턱이 있는 줄 미처 모르고 휠체어를 타고 오다가 그대로 곤두박질해서 얼굴이 다 까진적도 있다고 했다.

행정복지센터 2층에 탁구장이 있는데 탁구장에 갈때나 올 때나 휠체어가 다닐 길이 없어서 정말 화가 난다고 했다. “비장애인은 아무데나 화단을 가로질러 가기도 하고 자동차 사이를 비집고 다니기도 하는데 휠체어 이용 장애인은 다닐 길도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이건 분명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이다. 그래서 법 이전에 유니버설 디자인이 필요한 것이다. 모든 사람을 위한 디자인으로 건설했더라면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뿐 아니라 어르신 보행기도 다닐 수 있고 유모차도 다닐 수 있고 요즘 유행하는 개모차도 자유롭게 다닐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장애인을 위한 것이 모두를 위한 유니버설 디자인이 될 수 있을 것이므로.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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