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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주 전, 7월 3일 한국 대법원에 해당하는 일본 최고재판소가 ‘구 우생보호법’에 의거해 50여 년 동안 장애인에게 불임수술을 강요한 건 헌법 위반이라는 판결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와 관련해 1950~1970년대에 불임수술을 당한 장애인들이 국가에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최고재판소는 국가 배상책임을 인정했다는 거다.
‘구 우생보호법’이란 나치 독일 ‘단종법’을 참고해 ‘불량한 자손 출생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1948년~1996년까지 시행된 법으로 적용대상인 유전성 질환자, 지적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임신중절과 강제불임 수술을 강요했다. 7월 3일 자 KBS 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불임수술을 받은 24,993명 중 강제 수술의 경우는 16,475명에 달했고, 최연소 피해자는 고작 9살, 10대 이하 젊은이 피해 사례는 2,714건에 달했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불법행위가 있은 지 20년이 지났기에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을 주장했지만, 최고재판소는 정부 주장을 불수용했다. 이후, 일본 기시다 총리는 구 우생보호법 집행자 입장에서 진지하게 반성·사과한다고 말하며, 추가적 배상의 입장을 전했다. 참고로 2019년 피해자 1인당 지급된 위자료는 2천8백만 원이었는데, 이번 판결로 확정된 배상액은 1인당 약 1억 4,500만 원이다.
이걸 보며, 법리를 따르지 않고. 인권의 가치 추구를 결정한 일본 사법부의 전향적인 태도에 박수를 보낸다. 여기에는 강제불임으로 피해를 받았던 생존자들의 소송을 통한 끈질긴 싸움도 한몫을 했다. 싸움 끝에 최고재판소로부터 위헌판결을 들은 당사자들은 기분이 최고라고 말한 게 백만 번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강제불임은 장애인의 자유롭고 고지된 동의 없는 정관·난관 절제 수술 등 재생산권을 침해당한 거기에, 인권침해는 물론 인권유린이다. 장애인의 자유롭고 고지된 동의를 원칙으로 하는 장애인권리협약에 정면 위반하는 건 물론이다. 또한, 강제불임을 가능하게 한 일본의 우생보호법은 여성이 장애가 있으면 장애아를 낳을 거란 근거 없는 장애에 대한 편견에 기반한 거라 장애인차별을 조장하는 법이기도 하다.
현재 일본 국회와 정부는 이와 관련해 보상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고 한다. 보상이란, 타인에게 가한 손해를 갚아주는 것으로, 원인이 정당하더라도, 손실이 발생하면 그걸 갚아준다는 거다. 그런데, 장애가 있으니 재생산권은 침해당해도 정당하다면 인격이 무시당하는 등 인간의 존엄성이 유린당하는 게 정당화되는 거고, 더군다나 국가가 허용한 행위기에 이는 국가 폭력이다. 상식적으로 인간의 존엄성이 유린당하는 걸 적법하다고 할 수 있는가? 이건 불법이다.
그러니, 이거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실을 갚아준다는 배상이란 개념이 맞는 거다. 바꿔 말하면 보상이란 말을 통해 일본 정부와 국회는 아직도 일본의 장애인을 한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는 현실인 거다.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앞으로 일본 국회와 정부가 장애와 장애인과 관련된 인식이 어떻게 변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일본 사회에서 자행한 장애인 강제불임 행위에 대해 사죄의 메시지를 전하는 일본 기시다 총리. ⓒSBS 뉴스 유투브 동영상 캡처
그러면 장애 여성 강제불임과 관련해 현재 우리나라 현실은 어떨까? 우선 2년 전 9월 9일에 장애인권리위원회의 최종견해를 통해 대한민국 정부에 내린 우려와 권고사항을 한번 보자.
위원회는 장애여성들에 대한 강제불임수술을 금지하는 법률 조항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 관행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우려한다. 또한, 이 문제에 대해 당사국이 수행한 실태조사에 관한 정보가 없음을 우려한다,
위원회는 당사국에게 장애여성과 여아, 특히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여성과 여아들에 대한 강제불임과 동의 없는 임신 중단 관행을 근절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 또한,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발생하는 모든 사례를 식별, 조사 및 추적하기 위한 메커니즘을 수립하고, 해당 사례에 대한 완전한 배상을 제공하며 강제불임수술로부터 장애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한다. (출처: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장애인권리위원회 2·3차 최종견해)
10년 전 장애인권리위원회의 대한민국 정부 심의에서 위원회는 정부 차원에서 강제불임 실태조사에 대한 정보가 부재함을 우려했다. 이에 따라 강제불임을 근절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과 아울러, 강제불임 사례 조사를 권고했다. 하지만 장애인권리위원회의 대한민국 2·3차 병합국가보고서 심의 때도 강제불임 사례 조사 등 실태조사 부재했고, 강제불임을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도 않았음이 드러났다. 이에 위원회는 2·3차 때와 거의 똑같은 권고를 내렸다.
지금도 강제불임을 막기 위한 법적·제도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는 등 강제불임 근절조치를 취하지 않는 건 물론, 관련 실태조사 자료도 없다. 4·5·6차 심의가 잠정적으로 2034년 늦가을로 예정됐고, 2031년 1월에 2·3차 최종견해 이행사항에 대한 보고서를 정부는 제출해야 하니, 위원회의 강제불임 관련 권고를 정부가 이행하는 데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다. 하지만 장애인권리협약 이행 의지 없는 정부를 보면 4·5·6 최종견해에도 똑같은 권고가 내려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우려에 나온 대로 강제불임을 법적으로 금지한 건 맞다. 1999년 2월, 모자보건법에서 정부가 강제불임을 명령할 수 있다는 9조 조문은 폐지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법에서 금지하는 것과는 달리 장애인의 강제불임 및 강제낙태는 비밀로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다. 다음은 강제불임과 관련한 기사다.
남성 입소자와의 사이에서 A씨가 아이를 낳자, 시설장은 A씨 및 다른 여성장애인 6명과 함께 본인 동의서도 받지 않은 채 시술을 시켰다고 A씨는 말한다. 당시 시술을 받았던 B씨도 조기 폐경이 찾아와 아기를 낳지 못하게 됐다. 5년마다 피임 기구 교체가 이뤄져야 함에도 사후관리는 이뤄지지 않았다(출처: 보호시설 장애여성 강제피임 의혹, KBS 2018년 9월 21일 기사)
한 보호시설에서 강제로 지체장애 여성에게 피임 시술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고 보도하는 모습. ⓒKBS 뉴스
본인 동의를 받지 않고, 피임 기구 교체 얘기가 나온 걸 보면, 시설에서 강제불임이 일어나지 않았나 하는 의혹이 생긴다. 당사자의 진정한 동의하에 피임과 낙태가 이뤄진다면 문제가 없지만, 그런 동의가 없기에 인권침해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이면에는 지원의사결정체계가 아닌 성년후견 등의 대체의사결정체계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것에 그 요인이 있다.
피후견인의 잔존능력을 존중하면서, 자기결정권 증진이라는 명목으로 성년후견 제도가 시행된다고 하지만, 피후견인 선호와 의지, 욕구나 후견제도와 이 제도로 인한 불이익을 충분히 이해했음을 진정으로 확인하는 장치와 절차가 없다. 확인하기 어려워, 피후견인 의사는 무시되니 자기결정권은 박탈되며, 그렇게 시설수용이 만연된 사회로 가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자기결정권이 박탈되는 시설에서 동의 없는 강제불임, 강제낙태는 공공연히 이뤄질 여지가 상당히 높다.
장애인이 장애아를 출산한다는 게 편견이라는 건 통계에서도 증명된다. 보건복지부의 2014년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부부의 94.2%가 장애가 없는 아이를 출산했다. 3년 뒤의 2017 장애인실태조사에선 그 비율이 96.4%로 늘어났다. 그럼에도, 장애인이 아이를 키울 능력이 없다는 등의 편견 가득한 우리 사회는 장애 여성 불임을 강제로 종용하기 쉬운 환경인 거다.
장애인 등이 아이돌보미를 이용해 돌보미가 아이를 돌보도록 하는 아이돌봄서비스도 자부담이 높고, 자녀 양육과 관련한 활동지원서비스가 충분하지 않다. 출산지원금도 과거 100만 원에서 올해 120만 원으로 인상됐지만, 일회성 지원이다. 전국적으로 장애친화 산부인과는 10개소 지정됐고, 현재 4개소가 운영되고 있지만, 산부인과 의료진의 장애 여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이처럼 장애여성의 재생산권 보장이 미흡하고 자녀 양육 관련 지원이 충분하지 않은 요인도 강제불임을 부추기게 한다.
장애인 모부성권을 촉구하는 장애여성.ⓒ에이블뉴스DB
따라서 장애인은 아이를 키울 능력 없다는 편견을 불식시키기 위해 장애인이 겪는 어려움을 개인의 문제로 왜곡하는 장애인식교육은 장애인권리협약의 정신과 내용에 맞게 다양성을 존중하는 내용으로 바꾸고 이 교육을 훈련수준으로 체계적이고 정기적으로 의료진 등에게 해야 한다. 아이돌봄서비스의 자부담을 낮추고, 활동지원서비스를 장애여성에게 충분하게 지원하는 등 장애인의 자녀양육을 지원하고 재생산권을 보장하는 조치들을 마련해야 한다.
강제불임 사례에 대해 전국적 차원의 실태조사를 해야 함은 물론이다. 더구나 강제불임은 장애인 개인에게 있어선 인생에 상당한 트라우마를 일으키는 거라, 강제불임과 관련한 진상규명 시 장애여성 등 장애인들의 진술 신빙성을 따지기보다, 이들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트라우마 인지적 방법을 통해 이들이 진상규명을 자연스레 제대로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또한, 사회적 지원책 부재와 우리 사회에 만연한 편견으로 인해 장애인 강제불임이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거라, 국가가 조장한 강제불임이니 강제불임에 대해선 국가가 배상하는 게 백번 맞다. 피해배상금은 시설정책을 추구한 국가의 재원과 강제불임을 자행한 시설, 병원 등이 상당한 분담금을 내는 것을 통해 마련했으면 한다.
배상할 때는 피해배상금만 달랑 주고 끝내는 게 아니라, 강제불임을 당한 장애인, 특히 장애 여성과 소녀의 삶을 전체적으로 보는 관점에서 물리적·정신적 피해 등으로부터의 온전한 회복을 도모하도록 상담 등 충분한 지원이 지속되어야 하며, 국가의 진정한 사죄가 있어야 한다. 아울러, 지원의사결정체계 도입을 통해 장애인의 진정한 의사, 선호 등을 확인하는 절차,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 사회에서 공공연히 이뤄지는 강제불임은 근절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강제불임을 당한 장애인 피해 생존자들에게 사죄하고, 추가 배상을 약속하겠다는 기시다 총리의 태도에서 일본 정부의 장애인권리협약 이행하려는 의지가 보였다. 우리나라도 공공연하게 이뤄지는 강제불임 사례에 대해 배상하는 등 강제불임 근절을 위한 구체적 조치를 도입, 시행하도록 정부는 이런 일본의 사례를 깊게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장애인 강제불임 피해 생존자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 할 것이다. 장애인권리협약 이행은 물론 이를 통한 인간 존엄성 회복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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