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인이 겪은 ‘12‧3 비상계엄 ’ 경험·생각과 앞으로의 방향
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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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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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4일 저녁 국회의사당 본관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퇴진을 위해 시위하는 모습. ⓒ이원무
다행히도 지난 14일 탄핵 투표는 4표를 넘긴 204표로 가결돼,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되었다. 나는 당시 탈시설 가이드라인을 동료들과 UN 장애인권리위원회 위원님과 같이 공부하던 도중 탄핵 가결 소식을 접했기에, 이들과 같이 축하하면서 기쁨을 만끽했다. 시민들이 우리 민주주의를 살리고 있다는 느낌에 가슴이 뭉클해지며 시민의 한 구성원으로 자부심이 들었다.
그런데 그전까지 해도, 탄핵 가결선인 200표를 과연 넘을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던 건 사실이다. 탄핵 표결을 위한 정족수 200명을 넘지 못해 표결 자체가 무산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자신의 내란죄를 사죄하고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정당화시키는 모습에 ‘국민의힘’ 의원들의 이탈표는 더 많이 생겨 탄핵에 필요한 투표수를 넘겼단 생각이 든다.
비상상황 가운데 하나인 이번 비상계엄 포고령엔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 활동을 금한다던지,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 통제를 받는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러니까 카카오톡 등의 SNS 검열은 물론이고, 현 정부 생각과 반대되는 생각을 표현하면 가차 없이 공권력에 의해 검열받을 위험에 처하는 거다.
이러다 보니,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 등 다양성이 말살된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왔다. 만약 계엄에 성공했다면, 앞으로 언론·사상의 통제는 더욱 심해질 거고, 다양성은 더 많이 말살될 거다. 그러다 보면,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전제가 깔리며, 장애인이 다른 사람과 함께 어울려 공부하는 진정한 Inclusive Education이나 장애, 인종, 성적 지향, 빈곤 등 여러 요인들의 차별을 금지하는 다양성 존중 일환인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도 애당초 불가능해지겠지.
그런데 이런 관념적인 것도 그렇지만, 더욱 피부에 와닿는 건 팍팍한 서민경제, 죽음과 고문 등의 두려움과 비상계엄이 가져다주는 트라우마다. 비상계엄 선포 당시와 직후엔 나라가 불안정하다 보니, 원화 수요 감소와 달러 수요 증가로 환율이 올랐었다. 전량 수입인 기름값 상승은 물론, 제조에 필요한 원자재와 밀 등 수입 원자재들이 적지 않기에, 물가상승은 불 보듯 뻔하다. 이 경우 최저임금이나 생계급여 등으로 생활하는 서민들의 경제는 더욱 팍팍해진다. 특히 최저임금이 최고일 정도로 임금 후려치기 등의 차별이 심한 장애인의 경우는 더욱 그러했을 거다.
비상계엄을 선포하면 계엄 선포 측에선 자신과 반대되는 생각이나 행동을 하는 국회의원들이나 시민들이 있으면, 이들을 체포한 후 물리적이든 정서적이든 고문하거나 살인하는 과거 역사들이 적지 않다. 이걸 상기해 보면, 비상계엄을 통해 권력층들이 보기에 잘못한 사람, 장애인이나 눈에 띄는 사람들은 함부로 때리거나 구금돼도 괜찮다는 생각이 자라나게 된다. 이러면 구금시설의 일종인 정신병원이나 장애인 거주시설 등은 늘어나게 돼, 시설수용 역사는 유지될 거라 생각하니 끔찍하다. 이런 생각 때문에 죽음·고문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했었다.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작년에 주최한 ‘집단수용시설 인권침해 조사의 해외동향과 한국의 과제’
토론회 모습. ⓒ이원무
한편 대통령의 비상계엄 해제 이후에도 과천에 헬리콥터가 떠나지 않아, 소리가 계속 나기에 불안해서 잠들지 못하겠다고 자신의 어려움을 호소한 지인도 있었다. 그 지인에겐 비상계엄이 하나의 트라우마로 다가온 게 느껴졌다.
이렇게 ’12.3 비상계엄‘은 우리에게 서민경제를 팍팍하게 하고, 트라우마를 안김은 물론 다양성 말살과 죽음 등의 두려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이 이루어졌지만, 아직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인용은 이뤄지지 않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라, 비상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바라기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인용이 이뤄지길 말이다.
’12.3 비상계엄‘은 헌법 제1, 2, 77조를 어긴 내란죄이자, 국가폭력이다. 이런 국가폭력으로 국민들은 트라우마를 입은 거다. 그러니 비상상황 이후 정부는 이 국가폭력에 대해 공식적으로 진심 어린 사과를 함은 물론, 국가폭력으로 인한 정신적·정서적 손해와 경제적 손해 등에 대해 국민 개개인 삶의 관점에서 총체적으로 제대로 배상하는 시스템을 마련해 이를 시행해야 한다.
비상계엄 선포·해제 당시 대통령 옆에 수화통역사가 나와서 통역하거나, 화면 밑에서 통역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쉽거나 맥락에 따른 언어로 비상계엄 내용이 전달되는 것도 없었다. 따라서 앞으로 비상상황 시 수화통역사가 통역하거나 화면 밑에 통역하는 모습이 나오도록 함은 물론 쉽거나 맥락에 따른 언어로 이런 상황에 대한 정보가 전달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비상상황 이후 특히 심리사회적 장애인의 경우엔 트라우마로 인한 급성기가 종종 올 수 있기에, 이들에게 오픈다이얼로그, 정서적 심폐 소생술, 고조완화기법(De-escalation) 등의 비강압적 방안을 마련해 정신병원 강제입원의 일말의 가능성을 원천 봉쇄해야 함은 물론이다.
장애가 있는 개인들에게도 비상계엄과 같은 비상상황 시 이에 대처하는 방법을 나름대로 가질 필요가 있다. 필자의 경우엔 자폐성 장애가 있기에, 나 나름대로 신뢰할 수 있는 비상연락망을 갖추고, 적절한 행정조치를 받기 위해 복지카드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는, 진단서를 떼어놓고서 내가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게 이러함을 알려주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비상상황 때는 통신과 전기가 작동되지 않을 수도 있어, 그때를 대비해 휴대용 라디오를 준비해두는 게 도움 된다고 생각한다. 휴대용 라디오를 통해 비상상황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음은 물론, 이 라디오는 배터리도 오래 가는 데다, 내구성이 스마트폰에 비해 좋기에 그렇다. 휴대용 라디오에, 초콜릿, 비스킷, 생수 등의 비상식량, 건강식품, 치약, 칫솔 등까지 챙길 수 있도록 피난가방 구입도 필요하다.
Sony 휴대용 라디오 모습. ⓒWikipedia
통신과 전기가 작동되는 경우엔 나를 포함해 가족들 간 서로의 자유롭고 고지된 동의를 통해 스마트폰 등에 위치추적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외에도 자폐성 장애인의 경우엔 빛이나 소리 등의 감각에 민감하기에 감각 과민을 줄여 심신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안전한 피신처나 나만의 장소를 평소에 알아두는 것도 필요하다.
한편, 심리사회적 장애인은 비상상황에서의 자극을 다른 이들에 비해 더 깊고도 많이 자주 느낀다. 필자가 아는 심리사회적 장애가 있는 지인은 자신의 경험이라 하면서, 비상계엄 등 비상상황에 대처할만한 방법들을 알려줬는데, 그 가운데 몇 가지가 유용하다고 느껴져 이를 여러분께 소개한다.
①심리적으로 고립감을 느끼지 않도록 해주고, 자극적인 것을 모두 차단한다.
②그 이후에는 전쟁, 비상계엄 등의 비상상황 시 비상식량으로 활용되는 초콜릿이나 식빵 등을 먹으며, 맛과 풍미를 충분한 시간 동안 제대로 느끼거나, 간단히 명상하며 심신을 안정시킨다.
③심신이 안정된 후엔 믿을 수 있는 기관에서 정보를 접하도록 한다.
④이외에도 카톡 등에 대해 검열 있을 시 시그널 등의 보안 메신저로 피신해, 서로 간 소통이 이뤄지도록 한다.
이외에도 여기 열거하지 못한 장애 유형이 있으신 분들이 있을 줄로 안다. 설령 자폐성 장애인, 심리사회적 장애인이어도 비상계엄 등의 비상상황에서 자신만의 대처방법이 있을 줄로 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에 대해 자신만의 방법을 댓글로 남겨주시면 고맙겠다.
아까도 말했지만, 탄핵 인용 판결이 아직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라 비상시국이다. 이런 상황이 탄핵 인용으로 되도록 빠른 시일내로 끝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새 정부에선 다양성이 존중되고 모든 이들의 인간다운 삶이 현실로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마지막으로 다양성 증진의 일환인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란 희망의 실마리가 느껴졌던 한 활동가의 발언을 인용하며 글을 마치겠다.
“5.18을 겪은 시민분의 평일 집회 발언을 듣고 지난 14일(토요일) 집회 무대에서도 발언해주셨으면 해 부탁드렸어요. 그런데 평일 집회 발언 때 ’정신병자‘라는 단어를 사용하셔서 섭외 요청을 드리면서 ’다양한 사람이 함께 하고 있으니 그런 표현은 지양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부탁드렸어요. 그러자 그분께서 14일 발언에서는 ’다양한 시민이 함께하고 있다‘는 메시지까지 담아주셨어요. 감동적이었어요.” - 비상계엄 행사기획팀 신혜정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 (출처: “반짝이는 응원봉 보며 자신감 있게 ’다만세‘ 틀었죠”, 프레시안, 2024년 12월 19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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