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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한 교도소에 수용돼 있는 장애인 A씨(청각장애)는 교도소에서 틀어주는 안내방송을 듣지 못한다. 아파서 진료를 받을 때도 의료진에게 어디가 아픈지 제대로 전달할 방법이 없다. 그나마 수어와 구화가 가능한 A씨는 형편이 나은 편이다. 대부분의 청각장애인은 의료서비스에 애를 먹는다. 전담 인력이 없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수어를 배운 교도관에게 의존한다. 평소 대화 상대가 없는 A씨는 “일상생활은 하고 있지만 마치 왕따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5일 서울시 중구 국가인권위에서 ‘구금시설 장애인 수용자 인권실태 및 개선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국가인권위 의뢰를 받아 지난해 10월 실시한 ‘구금시설 장애인수용자 정당한 편의제공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전체 구금시설에서 생활 중인 전체 장애인(1529명)을 우편으로 조사하고 장애인 수용자 7명, 교도관 6명, 교도소 의료직원 6명을 인터뷰한 결과이다. 김동기 목원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연구 책임을 맡았다.
그에 따르면 교도소와 구치소 등 구금시설 내 장애인 수용자들은 일반 수용자에 비해 열악환 환경에서 생활한다. 의료서비스와 각종 시설 이용, 이동에 대한 접근권도 떨어진다.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형집행법)’ 54조는 ‘(교정시설 소장은) 장애의 정도를 고려하여 그 처우에 있어 적정한 배려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장애인 수용자의 편의를 위한 요구는 많은 경우 무시된다. 장애인 수용자에게 ‘구금시설 입소 후 장애 관련 필요한 의료조치와 물품 등을 요구한 적이 있었냐’고 물었더니 59.1%가 “그렇다”라고 답했다. ‘해당 요구가 받아들여졌느냐’는 질문에는 “아무 것도 들어주지 않았다”는 응답이 23.0%, “절반 정도 들어줬다”는 응답자가 26.5%로 나타났다. 심지어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목발과 휠체어, 의족, 보청기 등 의료보조기구에 대해서도 “허락받지 못했다”고 응답한 비율이 11.4%에 달했다.
이동에 있어서도 불편을 호소했다. 구금시설 내 이동하는 데 불편한지 물었더니 응답자 30.4%가 “불편하다”고 답했다. 응답자 39.3%는 화장실 이용에도 불편함을 느낀다고 했다. 장애인 수용자에게 제공되는 처방과 진료 등에 대한 만족도도 낮았다. 의료서비스에 대한 주관적인 경험을 취합해 점수를 냈더니 4점 만점에 평균 2.5점 미만으로 나타났다. 특히 ‘장애에 대한 이해’와 ‘장애를 고려한 편의제공’ 부분에서 점수가 낮았다.
장애인 수용자에 대한 직접적인 인권침해 사례가 적지 않지만 권리구제 절차에 대해서는 제대로 몰랐다. 지난 6개월 간 교도관과 다른 비장애인 수용자로부터 ‘신체적 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장애인 수용자는 각각 3.3%와 5.5%에 이르렀다. 교도관과 다른 비장애인 수용자로부터 ‘원하지 않는 성적인 접촉을 직접 당했거나 동료 장애인 수용자로부터 전해들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각각 1.8%, 2.6%의 응답자가 “그렇다”고 답했다. 하지만 침해받은 권리를 구제받을 수 있는 교도소장·구치소장 면담과 청원,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등의 절차에 대해 “알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30%에 불과했다.
김동기 교수는 “의료진의 장애감수성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고 장애인 수용자에 대한 편의제공을 강화할 수 있도록 관련 지침과 법령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구금시설에서도 장애 차별로 인해 장애인 수용자는 동등한 처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이들을 위한 정당한 편의제공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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