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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에서 열리는 ‘제44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가는 길에 제일 먼저 펜싱선수 김예지(대전광역시)가 떠올랐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작년 9월 ‘2023 부산 휠체어펜싱월드컵대회’에서였다. 월드컵에 참가하는 세계 최강 엘리트 선수가 아닌 펜싱 신인선수로서였다. 앳된 얼굴에 웃고 있는 눈매, 낯선 사람과도 대화를 자연스럽게 이어나가는 그녀는 전직 직업군인이었다.
스무살에 해군 부사관으로 입대해 헬기 부사수로 창공을 누비던 그녀가 교통사고로 척수장애인이 된 것은 25살이던 해, 군에서 전역한 지 1년 만이었다. 헬기를 타고 격오지 근무를 하던 젊은이,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싶어 택했던 민간인 생활은 오래가지 못하고 불의의 사고로 휠체어 장애인이 됐다.
중상을 입었지만 군에서 다져진 체력으로 재활 속도가 매우 빨랐다. 초기엔 워커를 잡고 걸을 수 있을 정도여서 ‘곧 걸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으나 재활의 시간은 갈수록 더뎌졌고 기능적인 한계와 맞닥뜨렸다. 주변에서 그녀처럼 어리고 젊은 장애인을 보는 것 자체가 힘들었고 자신을 인정하기 어려웠던 시간이었다.
군인정신으로 무장한 그녀는 사고 후 8개월 만에 세종시장애인체육회를 직접 찾아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세종시장애인체육회는 20대 중반의 젊은 척수장애인 내방자에게 맞는 운동 처방과 장소를 안내해 줬다.
재활운동의 첫 단계, 수영으로 생활체육에 입문한 그녀는 휠체어펜싱 경기 모습을 처음 보고 머리 한쪽이 번쩍했다. 일대일로 짧은 시간에 강렬한 경기를 하는 모습에 그동안 잠자고 있던 ‘승부욕’이 다시 살아나 심장이 뛰었다.
이후 휠체어펜싱에 정식 입문해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천선수촌의 신인선수 합동훈련을 시작하며 그녀의 합숙생활이 다시 시작됐다. 군생활과 교통사고 이후 본인에게 다시 올 수 없는 생활 패턴이었던 합숙, 그때는 싫었고 지금은 좋다. 왜냐면 이제는 국가대표라는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소속감이 있기 때문이다. 태극기를 달고 지난 7월 폴란드 바르샤바 월드컵에서 8강까지 진출하는 승리 체험을 하고, 올해 3월과 4월에는 국내 랭킹 1위에 오르며 그녀의 기량은 수직상승 중이다.
영화 ‘범죄의 도시’ 분장팀장 출신으로 주목을 받았던 휠체어펜싱 조은혜가 그녀와 같은 스포츠등급(1~2등급 B카테고리)이다. 지난 ‘2024 파리패럴림픽대회’에서 휠체어펜싱은 권효경이 여자 에뻬 종목으로 28년 만에 메달을 따며 화제를 모았다.
휠체어펜싱이 모처럼 주목을 받았지만 김예지는 출전권을 따지 못해 파리행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 이번 전국장애인체전에서 조은혜를 플뢰레와 사브르 개인전 결승에서 두번 만나 두번다 우승 자리를 내주었으나 조은혜는 패러림피언(패럴림픽 대회에 출전한 경험을 가진 선수를 일컫는 말)이다. 선수에게 경기경험은 최고의 무기이니 파리대회 이후 조은혜는 보다 더 경기력이 좋아졌을 것이고, 그 뒤를 바짝 쫓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병상에서 8개월 만에 세상에 나오고 운동 2년 만에 국가대표가 된 그녀의 ‘회복탄력성’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김예지는 자신의 장애가 나을 수 있는 병이라고 생각하고 병원을 순례하듯 다녔던 시간이 아깝다고 말한다. 현재를 인정하고 나답게 잘할 수 있는 것, 펜싱선수 김예지는 운동으로 세상의 인정을 받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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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옥 객원기자는 25년 동안 장애인체육계에 종사했으며, 현재 장애인스포츠 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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