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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과 뇌병변 중복장애를 가진 학생이 점자를 읽는 것이 서툴러 고등학교 입학 후 지속적으로 대독 대필 평가를 요청했으나 중간고사 5일을 남겨두고 대독 대필이 불가능하고 점자정보단말기를 이용하라는 통보를 받아 부모가 분통을 터뜨렸다.
22일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장애학생 정 군의 부모에 따르면 지난 19일 중간고사 지필 평가를 점자정보단말기를 이용해서 치르라는 통보를 받았다. 오는 24일부터 시작되는 중간고사 시험을 겨우 5일 앞둔 날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익수사고로 저산소성 뇌 손상과 사지 마비로 생사의 갈림길에 있었던 정 군은 기적적으로 살아났으나 시각장애와 뇌병변 장애를 갖게 됐다.
이후 최선을 다해 재활치료를 받았고 올해 통합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됐지만, 재활치료에 집중하느라 점자 공부를 뒤늦게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현재 점자정보단말기 ‘한소네’를 사용하고 있으며 점자는 읽는 것은 가능하지만 원활한 속도가 나오지 않아 수업을 따라가거나 시험을 점자로 치르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특히 사고 이후 11년째 매일 병원과 복지관을 다니며 치료에 전념해 늦게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점자 공부도 일주일에 한 번 시각장애인복지관을 다니며 배우는 수준이고 뇌병변 장애로 소근육을 원활하게 사용하지 못해 점자를 읽는데도 영향이 있는 상태다.
이에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는 정 군의 학교 공부와 평가를 듣고 말하기와 대체활용수단인 대독 대필로 해 왔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진학해서 처음 보는 중간고사를 5일 앞두고 학교 측은 시험을 대독 대필로 해 줄 수 없으니 점자로 읽을 수 있는 점자정보단말기를 사용해서 보라고 통보했다.
정 군은 지난달 3월 전국적으로 학력평가도 대독 대필을 해 줄 수 없다고 해 학력평가조차 치를 수 없었다. 시각장애학생이 1.7배의 시간을 부여받아 학력평가를 보면 아침 일찍부터 늦은 밤까지 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그걸 누가 하겠냐면서 자원이 없다는 이유였다고 정 군의 어머니는 전했다.
또한 신학기가 시작된 지 두 달이 돼가도록 점자 파일로 된 교과서도 일부 받지 못하고 있고, 학기가 시작된 후 2주 이내에 해야 하는 개별화교육회의를 계속 요청했으나 학교는 계속 뒤로 미루며 약속한 회의 날짜를 두 번이나 깨버렸다고 토로했다.
정 군의 어머니는 19일 개별화교육회의를 위해 학교로 오라는 말에 학교에 갔으나 정 군에 대한 교육 수립과 회의가 아닌 학업성적관리위원회까지 통과한 평가조정안을 그 자리에서 통보받아야 했다.
정 군의 어머니는 “학교의 교장은 모의고사는 대독 대필을 제공해 주지 못하지만, 중간과 기말 지필 평가는 대독 대필을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말을 뒤집으며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결국 정 군은 학교로부터 아무것도 지원받지 못하고 있다. 제대로 된 개별화회의도 교과서도 화면을 읽어주는 센스리더도 가장 중요한 평가 방식도 시각장애학생인 정 군에게 맞춰져 있지 않다”고 토로한 뒤 “장애학생은 장애 유형과 특성과 정도에 따라 평가를 조정해서 적용해야 한다는 국립특수교육원의 평가 메뉴얼이 있음에도 메뉴얼을 지키지 않고 입맛에 맞는 것들만 선택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덧붙였다.
특히 정 군의 어머니는 “장애학생과 학부모의 의견을 개별화교육회의 때 함께 듣고 함께 머리를 맞대며 장애학생에 대한 교육을 수립해야 함에도 모든 것을 무시하고 학업성적관리위원회까지 통과한 평가조정안을 통보한 것”이라고 분노를 표했다.
학교 측은 “대독은 불가능하고 시험문제를 점자정보단말기를 이용해서 읽되 만약 뇌병변장애 등으로 인해 필기가 불가능하면 학생의 음성을 녹취해 문서화한 뒤 채점하는 방식으로 시험을 진행하겠다고 어머니께 안내를 드렸다”고 밝혔다.
이어 “대독 대필의 경우 대독해주는 사람에 따라 유불리가 발생할 수 있고 외국어 같은 경우 과목 담당하는 선생님이 대독을 해줘야 하는데 과목 담당 선생님은 해당 시험 시간에 시험문제의 오류가 없는지 확인하고 전체 공지해야할 의무가 있는 등 제한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학교 측은 또한 “정 군의 점자활용 능력에 대해서는 한국어 점자는 읽을 수 있지만 느린 상황이고 외국어의 경우 한글자씩은 읽을 수 있지만 연결해서 단어, 문장으로는 읽지 못한다. 또한 수학의 기호는 점자를 알지 못해 큰 글씨 시험지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대독 대필은 지금 당장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겠지만, 결국 정 군이 계속 써야 하는 문자는 점자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을 성장시켜 나가야 하고 점자 활용능력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학생이 졸업 이후 까지 대독 대필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번 결정은 선생님들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어떤 식으로 지원하는게 궁극적으로 도움이 될까 하고 내린 판단”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정 군의 어머니는 “입시 위주의 현 고등교육 과정에서 많은 학생들이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고 그것은 장애학생인 우리 아이도 마찬가지다. 현재 학교에서 하는 방식으로 시험을 치르면 시험을 거의 치를 수도 없는 상황인데 학생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라고 분개했다.
이어 “점자정보단말기를 수업에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시험도 이것을 통해 보라고 하는데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신발을 신고 있으니 뛰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라며 “학생의 장애 특성과 정도를 고려하지도 않고 그러한 판단을 내린 것은 횡포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또 수학의 경우 큰 글씨 시험지를 제공해준다고 하는데 아이도 ‘내가 그걸 볼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걸까’라며 황당해하더라. 아이가 점자를 익히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학교를 1년 유예해 가며 매일 복지관에서 점자교육을 받았지만, 점자 습득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고 특히 중도시각장애인에게는 더욱 힘든 일이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정 군이 수능시험을 점자로 보는 게 나의 소망이고 기대다. 당장이라도 다음 학기, 2학년, 3학년에 점자활용 능력이 일취월장해서 그렇게 시험을 보게된다면 너무나 좋겠다. 하지만 현재 그것이 불가능하고 학교에서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시험을 쳤을 때 안 좋을 결과가 나올 것이 뻔한데 그것이 과연 학생의 미래를 위한 판단이고 결정인 것인지 의문스럽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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