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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기사

보행 장애인이 겪는 접촉 사고란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 1,763회 작성일 23-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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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이 있다. 갑작스럽게 끼어든 일이 루틴을 헤집어 놓는 그런 일 말이다. 분당에서 동대문까지 편도 25km. 7시 전에 나서야 차가 밀리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밀리는 길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2시간 가까운 시간을 길에다 쏟아붓는 일은 끔찍하다.

보통은 6시 알람에 맞춰 기계처럼 일어난다. 전날 애청하던 드라마의 막방을 본방을 사수한 결과는 힘들었다. 이설과 윤단오의 뜻밖의 결말은 허무했다. 여하튼 그랬다. 6시 43분, 라디오를 켬과 동시에 출근한다. 그리고 아내가 타준 커피를 홀짝인다. 일찍 나서는 만큼 지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성남대로를 지나 분당 수서간도시고속화도로로 올라타고 강변북로로 내려선 다음 동부간선도로로 한 번 더 내려가고 이어 내부순환도로로 올라타고 가다가 마장으로 내려 청계 9가 방면으로 가는 길이 쉬운 일은 아니다. 게다가 군데군데 주차장처럼 멈추기도 한다.

그날은 수서지하차도 가기 전 문정동 진입로에서 관광버스가 들어섰다. 보진 못했다. 사고가 나서야 알았다. 7시, 즐겨 듣는 라디오 DJ의 텐션 높은 목소리가 들릴 때쯤 멈춰있던 앞차가 멀어졌다. 커피 한 모금 마시는 순간 차간 사이가 조금 벌어졌다. 한데 그 틈으로 순식간에 관광버스가 칼치기하며 막 출발하려는 내 차를 우지끈 누르며 앞섰다. 잠시 황당. 그리고 어이없음.

 

어라? 쟤 왜 그냥 가지?

경적에 상향등을 번쩍이며 뒤를 쫓았다. 나 몰라라 하며 그냥 간다. 잘 간다. 막간다. 화나고 분했다. 어떻게 이렇게 큰 차를 못 볼 수가 있지?(내 차는 카니발이다. 그것도 시커먼 색이다.) 세상 욕설은 다 퍼부으며 1km가량을 쫓았다. 겨우 따라잡아 버스 앞을 막아섰다.

막아서긴 했는데 잠시 난감했다. 도로가 약간 휘어지는 부분이라 경사가 있어 위험했다. 나는 휠체어를 탄다. 지팡이 하나만으로는 중심 잡기가 어렵다. 어쨌거나 내리려고 안전벨트를 풀고 지팡이를 드는 순간 버스가 기우뚱하며 옆으로 빠지더니 또 그냥 간다. 막간다. 황급히 운전대를 잡고 다시 버스를 막아보려 했지만 잘도 피하고 막간다.

화들짝 놀라고 화나고 분해서 112를 눌렀다. 저기요. 지금 내차를 들이받고 그냥 도망가는 버스가 있는데요. 뺑소니 신고 하는 찰나 버스가 멀어졌다. 그때 버스 앞을 막아서는 승용차가 보였다. 내 차가 찌그러지는 걸 순간 포착했을까. 운전자가 내려서 버스 운전석에 대고 삿대질에 막 뭐라 하고 홀연히 사라진다. 저 사람... 복 받을 거야... 암만.

버스 운전자는 그제야 억울한 낯빛으로 못 봤다며 지팡이를 들고 내려서려는 나를 말렸다. 우선 출근 시간이니 연락처 줄 테니 공장에 가서 견적 받으라며, 얘긴 그 후에 하자고 했다. 무슨 랩도 아니고 순식간에 리듬 실어 다다다 자기 할 말만 하고 자리를 떴다. 잠시 멘털 나갔다. 순간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출근길 가뜩이나 막히는 길을 더 막는 건 민폐 아닌가. 그렇게 버스와 사이좋게 나란히 꽤 오랜 거리를 달렸다. 이 기분 뭐지?

종종 겪게 되는 일이, 이번 접촉사고처럼 부득이하게 몸을 드러내야 하는 순간이 있다. 좋은 일일 경우야 적당히 앉은 채로 대화를 나누면 될 일이지만 좋지 않은 일일수록 몸을 드러내 마주 서야 그나마 대화든 다툼이든 해결이 된다. 몸이 불편하다는 걸 약점으로 혹은 얕잡는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이 꽤 많은 세상이다. 좋은 게 좋은 걸로 끝나지 않는 경우를 경험하는 일이란 불편한 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서 마음이 좋지 않다.

첫 출근에 이런 사고가 났다며 투덜대며 보험처리를 극구 피하는 통해 범퍼부터 뒷바퀴 쪽까지 쭉 이어진 손상 부분을 내가 카센터와 공업사에 견적을 받아야 했다. 하루 종일 운전해 봤자 15만 원이라며 봐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게 안 되면 회사에 말하고 보험 처리하라고 하고 자신은 퇴사해야 한다며 막무가내로 몰아붙였다.

내가 피해자고 나 역시 종일 근무 해봤자 당신보다 적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창피해서 참았다. 어쨌거나 렌트도 할 수 없는 금액에 합의했다. 하고 싶진 않았지만 한 순간에 일자리를 잃게 할 순 없잖은가.

결국 버스 운전자는 몇 번의 통화에도 미안하다는 사과는 없었다. 그가 진짜 첫 출근이었는지, 보험처리를 하면 잘릴 위기였는지 알 순 없다. 하지만 내 장애가 그가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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