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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차별금지법은 죽은 법이 되었다. 죽은 법이 아니더라도 죽어가고 있거나 죽은 법이나 마찬가지다. 장애를 이유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 장애인차별금지법의 목적이고, 법이 시행된 지 15년이 넘었지만, 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날로 심해지고 있는 반면에, 장애인차별금지법의 효과는 여전히 약하기만 하다.
지난해에는 공공기관인 코레일이 무궁화호 열차표를 미리 예매한 휠체어 사용자 A씨가 탑승하려 하자, 승객이 많다는 이유로 탑승을 거부한 사건이 있었고, 며칠 전에는 역시 휠체어 사용자 B씨가 식사를 하러 서울시 코엑스에 있는 식당에 식사하러 들어가려 하자, 주인이 휠체어 사용자는 손님으로 받지 말라고 지시했다며, 종업원이 식사 제공을 거부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휠체어 사용자 B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 캡쳐. ©배융호
이렇게 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지난 15년 동안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데,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의한 차별 예방도, 차별 금지도, 차별에 따른 조치도 느리기만 하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시민들의 인식이 높아져서 장애인에 대한 거부와 같은 차별을 스스로 하지 않는 것이지만, 이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빨리 막는 길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실효성을 높이는 것이다. 거부를 하고 싶어도 처벌이 무서워 못하도록 해야 한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지금처럼 계속된다면 자칫 차별의 일상화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어쩌다 벌어지는 차별 사건이 아니라 우리가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사건이 되는 것이 바로 차별의 일상화이다. 차별이 일상화될 때, 사람들은 차별에 대해 무감각해진다.
우리가 늘 숨을 쉬고 살면서도 산소의 존재에 대해 의식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차별에 대해 무감각해질수록 차별을 하는 사람들은 아무런 부끄러움이나 죄책감 없이 차별행위를 하게 된다. 더 무서운 일은 차별을 당하는 사람들조차 마치 차별 당하는 일이 일상인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일 우려도 있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심해진다는 것은 장애인을 차별하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죄책감이 사라져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권이나 차별에 대한 감수성은 없더라도 장애인을 거부하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미안함과 부끄러움은 있어야 한다. 그 미안함과 부끄러움 위에서 차별을 막는 시민의식은 성장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우리 사회는 그 최소한의 미안함과 부끄러움마저 잃어버렸다. 식당에서 장애인을 거부하고 나가라는 것을 보고도 주변의 사람들은 말리거나 식당 측을 나무라지 않는다. 마치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인 것처럼, 장애인은 쫓겨나는 것이 당연한 일인 것처럼 모두 무관심하다.
차별하는 사람도,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이미 사람이 사람을 차별하는 일에 대한 최소한의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잃어버렸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점점 더 비인간적인 사회, 불평등한 사회, 양심과 염치를 잃어버린 사회, 혐오와 차별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장애인의 문제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노키즈존이 늘어나고 노인 입장 금지가 확대되는 것은 이러한 거부와 차별이 장애차별에서 연령차별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거부와 차별은 이제 장애와 연령을 넘어 성, 외국인, 성소수자 등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모든 인권은 연결되어 있고, 모든 차별도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난 15년 동안 정부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제대로 홍보하지도 않았으며, 시민들에게 교육도 하지 않았다. 하다못해 한국외식업중앙회와 대한숙박업중앙회를 통해 외식사업주와 숙박사업주에게 장애인차별금지법을 홍보하고 장애인을 차별하지 못하도록 교육만 했더라도, 15년이 지난 오늘날 휠체어 사용자가 식당에서 쫓겨나고, 장애인객실이 없어 숙박을 못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이제라도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차별 진정 과정도 간소화해야 한다. 각종 민원을 신청하는 안전신문고 앱처럼 스마트폰 앱을 통해 차별을 받은 그 자리에서 바로 진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장애인을 거부하는 차별을 하고, 그것이 차별로 인정되는 순간 벌금을 내야 한다고 하면 지금처럼 쉽게 장애인을 거부하고 내쫓지는 못할 것이다.
안전신문고 앱 화면. ©배융호
미국의 장애인차별금지법인 ADA(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가 강력한 이유는 차별로 인정될 경우 많은 벌금을 내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9년에 시각장애인의 입장을 거부했던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 스파 업체는 1만 달러(약 1300만원)의 벌금을 내야 했다.
한국처럼 국가인권위원회가 차별로 인정한다고 해도 시정 권고만 하고 그것도 재발 방지를 하겠다는 약속만으로도 합의가 이뤄진다면, 장애인에 대한 거부와 차별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장애인 거부로 벌금을 낸 업체 관련 기사(Koreatiomes) (c) 배융호
장애인을 거부하는 차별로 인정될 경우 50만원이라도 벌금을 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차별로 인식하고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존재를 알게 될 것이다.
올해 총선 이후에 새롭게 구성되는 국회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개정되기를 바란다. 더 이상 장애인이 차별을 받아서도 안 되며,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죽은 법이 되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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