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부터 무인정보단말기(키오스크)와 응용 소프트웨어(모바일 앱) 등 장애인 정보 접근성 보장을 명시한 관련법이 시행되지만, 결국 장애계가 우려했던 단계적 적용이 불가피한 것으로 드러났다. 법 시행 이전 설치된 키오스크의 경우 3년 뒤인 2026년에야 이용할 수 있게 된 것.
장애계는 ”법만 시행되면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는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냐“고 반발한 반면, 산업계에서는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다“고 단계적 적용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보건복지부는 최혜영(더불어민주당)·김예지(국민의힘) 국회의원과 함께 27일 서울 국회도서관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대비 공청회’를 개최했다.
이날 공청회는 내년 1월 시행 예정인 무인정보단말기(키오스크)와 응용 소프트웨어(모바일 앱) 등 장애인 정보접근성 보장을 명시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 제15조 및 제21조가 통과됨에 따라 장애계 등 의견을 수렴해 하위법령을 확정하고자 마련됐다.
■키오스크 접근, 2026년까지 ‘단계적 적용’
이날 대구대학교 장애학과 조한진 교수,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홍경순 수석연구원, 성신여대 교육학과 노석준 교수는 ‘무인정보단말기 및 응용 소프트웨어에 대한 접근성 강화방안 마련 연구’ 결과를 통해 도출된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령안을 발표했다.
장애인 편의를 갖춰야 하는 키오스크 유형은 무인정보단말기의 유형을 규정하고 있는 ‘장애인․고령자 등의 정보 접근 및 이용 편의 증진을 위한 고시’ 중 우선구매대상 지능정보제품 종류에 따른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무인민원 발급기 ▲금융자동화기기(ATM기 등) ▲무인발권기(고속철도, 버스, 여객선 등) ▲무인주유기 ▲셀프체크인 ▲무인주문기 ▲무인주차 정산기 ▲무인도서 대여반납기 등이다.
특히 시행령안에는 장애계가 우려했던 ‘단계적 적용’이 포함됐다. 키오스크의 보급 확산 속도를 고려하되 소상공인을 포함한 사업자의 부담을 덜어주자는 목적이다. 법 시행 후 1년간의 유예기간을 두고, 2024년 1월 28일부터 2026년 1월 28일까지 총 3단계로 진행된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홍경순 수석연구원은 "민간의 경우 코로나 이후 키오스크를 설치해 고정비용을 줄이고 있는데, 정부의 지원 없이 바로 적용하는 것은 애로사항이 많다는 의견이 많았다"며 단계적 적용의 불가피 부분을 언급했다.
1단계(2024년 1월 28일) 적용대상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기관, 교육기관, 이동 및 교통시설 등, 의료기관 등, 공공기관에서 임차해 운영하는 사업장, 금융기관이다.
2단계(2024년 7월 28일) 적용대상은 문화·예술 사업자, 복지시설 등 관련 기관, 기타 사업장 중에서 상시 100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이며 3단계(2025년 1월 28일) 적용대상은 관광 활동 관련 사업자, 체육활동에 필요한 시설, 기타 사업장 중 상시 1명 이상 100명 미만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 등으로 명시했다.
단, 법 시행일(2023년 1월 28일) 이전에 설치된 키오스크의 경우 새로운 제도를 이행하는데 어려움을 최소화하되, 키오스크의 렌탈 계약(2~3년)을 참작해 2026년 1월 26일까지의 경과조치를 두도록 했다.
정당한 편의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장애유형별 꼭 필요한 부분을 중심으로 담아냈다. 구체적으로 휠체어가 접근할 수 있는 활동공간을 확보하고, 무릎과 휠체어 발판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 확보 등을 명시했다. 시각장애인의 접근을 위해서도 0.3m 전면에 점형블록 설치하거나 음성정보를 제공토록 했다.
또 키오스크 이용에 어려움이 없도록 자막, 점자자료, 그림자료 등을 제공하고, 사용 중 오류가 발생할 경우 의사소통 가능하도록 수어, 문자 등의 연결 수단 제공을 의무화했다. 터치스크린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선택 이용할 수 있도록 물리적 키패드, 카드 삽입구, 스위치 등을 인식할 수 있는 점자라벨 부착과, 이어폰을 통해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기능 제공 등도 의무화했다.
■모바일 앱, 6개월 단위 3단계 단계적용
응용 소프트웨어(모바일 앱) 관련 정당한 편의 내용은 이동통신단말기에 설치된 응용 소프트웨어가 장애인이 원하는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 보장되고, 이용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의사소통해 해결할 수 있는 인적 서비스 지원, 장애로 인해 이용이 어려울 경우 대비한 환불 규정 마련, 조작 어려울 시 음성명령 기능 지원, 쉬운 정보 제공 등을 의무화했다.
응용 소프트웨어 접근성 보장 역시 법 시행 6개월 후 3단계 적용토록 했다. 모바일 기기의 일상화가 이미 진행돼 있으므로 단계적 적용 기간은 6개월 단위로 정했다.
▲1단계(2023년 7월 28일): 공공기관, 교육기관, 교통시설 등, 의료기관, 300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 ▲2단계(2024년 1월 28일): 복지시설, 상시 100명 이상 300명 미만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 ▲3단계(2024년 7월 28일): 문화․예술사업자, 관광사업 관련 기관, 체육시설 등 관련 기관, 상시근로자 100명 미만 사업장(1인 사업자 포함)이다.
■단계적 적용? “언제까지 기다려” VS “시간 필요”
이날 공청회에서 공개된 시행령안 중 ‘단계적 적용’을 두고, 장애계와 산업계가 부딪혔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냐”는 비판과 “물리적으로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 팽팽히 맞선 것.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김성연 사무국장은 "키오스크는 이미 일상생활에 너무 퍼져있기 때문에 단계적 적용이 안 된다고 복지부에 여러 차례 문제제기 했지만, 이미 연구에는 단계적 적용이 전제돼 있다. 이미 공공의 강력한 의무를 부여하고 있는데 단계적 적용을 넣으면서 다시 공공의 의무를 유예시키고 실효성만 떨어뜨리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결국 공공의 의무만 약화시키고, 기간을 두면서 모두 민간에게 떠넘기고 있는 상황" 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 사무국장은 "1300개의 법률 중에 단계적 적용 두고 있는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유일하다. 이미 법이 시행된 지 14년이 되지 않았냐"면서 "단계적 적용이 아니라 일정 기간 경과 시간을 두고 전면 적용해야 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희망을만드는법 김재왕 변호사도 "단계적 적용이 굳이 있을 필요가 있냐는 생각이 든다"고 김 사무국장의 의견에 동의하며 "에버랜드 사업주 같은 경우 관광사업자라는 이유로 시행을 뒤로 미루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빨리할 것들은 빨리하고 나머지는 사업장 규모만 두고 적용할 필요가 있지 않나"고 의견을 밝혔다.
한국웹접근성평가센터 김훈 단장 또한 "법이 마련되면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계속 기다려야 한다. 당장 일상생활에서 분식점에 가도, 칼국수집에 가도 키오스크가 다 있는데 왜 3단계로 단계적 적용이 돼야 하냐"고 단계적 적용에 대한 문제에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김 단장은 키오스크 정당한 편의 제공 속 자막, 점자자료, 그림자료 등 제공과 더불어 저시력장애인을 위한 확대자료가 포함돼야 하며, 오류가 발생할 시에는 인적서비스가 필요하다고 보완점을 제시했다.
특히 김 단장은 민간사업자에 대한 인센티브가 없다고 지적하며, "장애인분들이 효율적으로 키오스크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부가적 지원이 동반돼야 한다. 행정적, 재정적, 기술적 지원이 반드시 신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산업계 측인 한국자동자판기공업협회 고정원 회장은 '단계적 적용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고 회장은 "시행령이 확정되면 그에 맞게끔 개발도 하고 인증도 받고 실제 테스트를 거쳐 필드에 내보내기까지 물리적 기간이 최소 6개월에서 1년이 걸린다. 산업계에서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장애인 접근성을 갖춰야 하는 키오스크 종류에 '터치스크린 기반의 스마트 자판기'가 포함된 것과 관련해 "키오스크 적용 법을 일률적으로 자판기 품목까지 적용하기에는 구조적, 기술적 한계가 있다. 키오스크는 서비스 목적이지만, 자판기는 수익 목적으로 다르다”라면서 “자판기는 냉장, 냉동 시스템을 구축한 상태에서 제품을 적재하고 고객에게 전달해줘야 하는 메커니즘이 굉장히 복잡하다. 일률적 법 적용은 상당히 불합리적"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지적에 책임연구원인 대구대학교 장애학과 조한진 교수는 “기계 자체를 바꿔야 하는 문제가 있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키오스크는 3년 렌탈로 이용하고 있는데, 경과기간을 안 둘 수 없지 않냐”고 단계적 적용이 불가피함을 다시금 짚었다.
‘공공의 의무만 약화시켰다’는 장애계 지적에 대해서 성신여대 교육학과 노석준 교수는 "공공이 자체적으로 키오스크를 개발할 수 있지만, 다른 업체에서 받아서 임대한다면 또다른 고려사항이 될 수밖에 없다. 공공 약화가 아니라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이 필요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공청회 방청석에 자리한 시각장애인권리보장연대 남정한 대표는 패스트푸드점과 무인편의점 등을 운영하는 5개 기업을 상대로 키오스크 이용 차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것을 언급하며 “단계적 적용은 안 된다”고 밝혔다.
남 대표는 "현재 소송 중인 업체들이 (접근성 보장을)안 한다고 한다. 시행령이 나와야 한다고 한다. 2026년까지 기다려야 하냐"면서 “키오스크 문제 7~8년 이상 오랫동안 문제제기 했는데 단계적 적용은 의미가 없다. 일상생활에서 접근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키오스크화 되지 않았냐. 복지부에서는 전면 시행을 검토해야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공청회를 끝까지 지켜본 민주당 최혜영 의원은 "처음부터 장애인들이 함께 이용할 수 있게 만들었으면 법이 필요할까라는 안타까움이 든다. 단계적 적용과 관련해 경제적 부분과 장애를 연결해선 안 된다"면서도 “이번 공청회를 통해 복지부가 장애계의 목소리가 수렴된 시행령을 확정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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